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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유튜브는 실로 놀라운 매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발신자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도 일종의 '검열' 같은 것이 있고, 권력 메커니즘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언론의, 매체의, 혁명은 혁명이다.

이 유튜브에서 요즘 두드러진 것이 역사 채널, 특히 고대사 채널이다. 최근 필자가 즐겨 보는 채널은 '책보고'라는 것, 그리고 '황현필 한국사'라는 것, 그리고 '이덕일 역사 TV' 같은 것인데, 그 공통점이 고대사 인식을 바꾸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몇몇 예를 들었지만 그밖에도 유튜브에는 이런저런 고대사 재인식을 겨냥한 채널들이 많다. 필자는 이 채널들을 대부분 '구독' 표시를 해놓았다.  

 

역사라는 것이 어떤 주장을 들어서 진위를 판단하기 쉽지 않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도 넘쳐나는 것이 유튜브일 것이다. 제각기 다른 고대사 이야기를 펼치는 많은 '유튜버'들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떤 대목은 비교도, 대조도 해보아야 하고 정히 궁금한 것은 해당 역사서를 직접 찾아보기도 해야 한다. 최근에는 '흠정 만주원류고'라는 책도 사보았고 '고구려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도 구입해 놓았다.

빅데이터 시대 각종 문헌·역사서
컴퓨터에서 비교·유추해야 할 것

남 보기에 흉이 될 만한 것은 차라리 드러내 버리는 게 낫다. 후배들 가운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고 그래서 각별히 믿고 경청하는 사람이 있어, 요즘 내가 이렇다 하니, '환빠'가 될까 걱정이라고 한다. '환단고기'를 진서(眞書)라 하고 단군이며 환웅을 신화에서 건져내 역사로 만드는 사람들에 휘말릴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면 과연 그렇다. 이광수를 연구한다고, 그의 역사소설들을 분석한다고 하다 보니 '마의태자'며, '원효대사'며, '사랑의 동명왕' 같은 작품들의 이면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려니, 신채호며, 최남선 같은 일제강점기 역사가들 담론을 '겉핧기'로나마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남선은 모르겠다. 신채호라면 그야말로 대쪽 같은 분이어서, 일찍부터 존경의 염을 품어,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 등을 '진심으로' 읽었다. 그렇게 해서 한 발 두 발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지리·강역의 '상식'을 넘어 슬금슬금 이설(異說)에 눈과 귀를 빼앗기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생각이 미친 것이 하나 있다. 오늘날의 역사학은 과거처럼 전통적인 문헌학과 고고학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니, 고대사 문헌들도 특정한 학설에 들어맞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취할 것이 아니라 고대사에 관련된 각종 문헌들, 역사서들을 모조리 컴퓨터에 집어넣고 발본적으로 비교·대조·유추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캐냈다, 저기서 캐냈다 하고 과거에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들이 밀어진 유물들, 무덤들도 탄소 연대 측정부터 유전자, DNA 분석 기술까지 새롭게 동원해서 재검증해야 한다. 지표면의 지형·지물을 샅샅이 스캔할 수 있는 탐사 장비를 동원해서 고대 도시의 흔적이나 성곽이나 성터도 다시 찾아내고 'AI 천문학'의 힘을 빌려 고대사 문헌들에 기술된 천문 현상들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통하여 해당 문헌의 진실성 여부를 가려내야 한다.

만사 한국인에 맞추자는게 아니라
역사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진심을' 발휘해 보자는 것


그래서 필자는 바야흐로 역사혁명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 인식의 혁명이요, 좁혀서 날카롭게 말하면 고대사 인식의 혁명의 시대다. 단재 신채호는 망명과 투쟁의 시대에 치열한 역사 탐구로써 한국인의 자기 인식을 새롭게 하고자 했다. 필자는 그의 역사 혁명이 백 년째 진행 중이었으며, 이 유튜브의 시대에 바야흐로 결실을 맺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아끼고 또 존경하는 후배가 다시 더 큰 걱정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사람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만사를 한국인 중심으로 짜맞추자는 게 아니다. 역사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 '진심을' 발휘해 보자는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