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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언어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혼란이 오고 그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또 말과 글이 있다 해도 올바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언어가 부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말과 언어는 그렇게 친절한 도구가 아니다. 말과 언어로 내 생각을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철학자로 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언어는 사실을 표현하며 세계를 그림 그리듯 보여주는 것인데, 만일 언어로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그릴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고 했다.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황과 규칙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론과 사용이론의 핵심은 바로 언어의 쓰임에 있다. 그는 세계의 구조와 언어의 구조가 서로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언어가 잘못 사용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았다. 언어는 게임처럼 사용 규칙을 잘 지켜야 하며, 그것을 잘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이득', '넘사벽', '듣보잡', '갑툭튀' 등 성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의 신조어나 줄임말도 문제지만, 성인들의 언어도 이에 못지않다. 청소년들이야 재미 삼아 자기들끼리의 문화를 만들어 소통하고 또 기성의 언어 질서에 대한 치기 어린 도전의 의미라도 있지만, 어른들의 언어는 너무 속물적이고 영악하다. 가령 최근의 아파트 이름들과 아파트 이름 개명 사태가 그렇다.

백설마을, 청솔마을 등 멀쩡하고 고운 한글 이름을 에듀 파크·센트럴 파크·리버 파크·타운·빌·스카이 뷰 등 너무 복잡하게 바꿔서 '길도우미'가 아니면 찾아가기 힘들다는 택시 기사님들의 하소연도 들려온다. 외국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는다고 아파트값이 오르고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는다. 아파트 이름들을 순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