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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미국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은 신이 축복한 외모를 가졌다. 얼굴, 체격, 음성, 태도가 대통령다웠다. 유권자들은 워런 하딩에 반했고 60%대의 지지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실상 그는 술과 도박, 여자에 이골난 한량이었다. 공화당의 계파 수장들이 정치 무능자인 그를 후보로 합의 추대했다. 허수아비를 세운 셈인데, 워런 하딩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술판, 도박판을 벌이고 측근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꼽힌다.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블링크'에서 '신속한 인식의 어두운 면'을 '워런 하딩의 오류'라 했다.

내일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이다. 돌이켜보면 대통령 윤석열은 대중의 신속한 인식과 정치적 행운이 겹친 결과였다.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검사의 인격에 대중이 환호했다. 권력의 핍박에 핏대를 세우며 대드는 검사는 난생 처음이었다. 때 마침 제1야당에 대통령 후보가 없었다. 당시 여당은 온갖 실정의 끄트머리에서 활력을 잃었고, 여당 후보 이재명은 흠집투성이였다. 대중을 '검사다움'으로 매료시킨 윤석열은 역대 민간 대통령이 거쳤던 정치적 과정을 생략하고 순식간에 대통령이 됐다.

지금 대통령 지지율은 30% 초반대다. 화제를 뿌렸던 방미외교 성과가 끌어올린 지지율도 미미하다. 저조한 지지율의 원인은 대통령이 좀비정치에 갇힌 탓이다. 서로 물고 뜯고 할퀴며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여야 생태계를 30% 안팎의 좀비형 극렬 지지층이 떠받친다. 대통령이 여기에 갇혔다. 윤석열에게 좀비정치의 청산을 기대했던 30~40%의 중도 대중이 지지를 철회했다. 대중은 검사만큼이나 대통령직을 대차게 수행할 것이라 믿었던 대선 판단이 오류였을까 걱정한다. 


'좀비정치'에 갇혀 지지율 30% 초반대 저조
국정 설명·이해구하는 도어스테핑 재개 필요


대통령이 좀비정치에 갇힐 이유가 없었다. 헤아리기 힘든 범죄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과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격이 달라졌다. 국민의힘에 대선 후보 씨가 말랐던 건 대통령에게 행운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은 그래서 집권여당이 됐다. 국민의힘에게 대통령은 은인이다. 그런데 갇혔다. 여야 좀비정치에 가려 대통령이 안보인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허리를 움켜잡고 민주당은 대통령 목을 문다. 민주당의 주적은 북한도 일본도 아닌 대통령이다. 대통령을 물면 이재명도 당도 살고 총선에서 승리한다 믿는다. 국민의힘에게 대통령은 권력의 수단일 뿐이다. 금배지가 우선이지, 대통령의 국정은 뒷전이다.

대통령은 미국을 감동시켰다. 한미동맹의 과거를 소환하는 연설로 현재의 동맹을 강화했다. 반대여론을 각오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 진정성에 일본 기시다 총리는 신속한 답방과 진전된 강제징용 발언으로 화답했다. 미국을 감동시키고 일본을 이끄는 정치력을 국내에서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 1년은 4년의 국정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충분했다.

구질구질한 막장 정치판을 벗어나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나설 때가 됐다. 도어스테핑 재개가 시작이다. 야당의 맹목적 반대와 여당의 무조건 찬성 사이에서 쟁점으로 허비되는 국정을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휘한 공감능력으로 국민과 만나면, 그 자체가 정치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대국민 연설·기자 간담회도 주저하지 말아야
민심앞에 자주 서서 새정치 전형 보여줘야


기회가 있으면 대국민 연설과 기자간담회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민주화와 한일관계 정상화, 노무현의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등 전직 대통령들을 소환해, 대한민국의 오늘이 보수와 진보 정권의 위대한 결단들이 축적된 결과임을 수시로 상기시켜야 한다. 역사에서 통합과 계승의 리더십을 길어내는 일만으로 좀비정치를 세탁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평산책방 주인장 문재인이 열정페이를 착취한다고 비난한다. 죽은 권력을 뭐하러 물어뜯나. 윤 대통령이 평산책방을 찾아 주인장에게 책 몇 권 구매하고 담소를 나눈다면, 그 감동은 아메리칸 파이보다 훨씬 진할 테다. 영원한 권력이 불가능한 건 민심의 발현인 시대정신이 권력의 현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좀비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민심 앞에 직접, 자주 서서 새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