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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별'을 볼 일이 없었다. 프로방스 지방의 목가적 감성이 도드라진 알퐁스 도데(1840~1897)의 '별'과 조우한 것은 오십 줄을 훌쩍 넘긴 수년 전 봄 어느 날 인사동 골목길에서였다. '별'은 도데에게 문명(文名)을 안겨준 단편집 '방앗간에서 온 편지(Lettres de mon moulin, 1866)'에 수록된 작품인데,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소년의 감수성을 뒤흔들더니 별빛처럼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은 교과서 소설이었다.

'별'은 황순원의 '소나기'와 함께 병영생활 같았던 학창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다. 따분한 수업과 군대 훈련소 같았던 민방공훈련과 반공웅변대회와 땡볕에서 일사불란하게 연습을 거듭해야 했던 매스게임 등 통제된 학교생활에서 '별'은 마음의 쉼터요, 내적 망명처였다. 교과서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읽어버린 소설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마치 처음 보는 작품인 것처럼 학교생활이 힘들 때마다 펼쳐 들었던 작품이었다. 교복 주머니 속에는 '삼중당 문고본 소설'도 있었으나 학교에서는 교과서 이외의 다른 책은 금지되어 있었고 선생님께 야단맞고 압수되기 일쑤였기에 '별'은 학교에서 합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었다.

'별'과 '소나기'는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까까머리 청춘들에게 사랑의 본질은 성적 결합에 있지 않고 맑고 순정한 감정에 있다는 것을 주입하기 위한 교육부의 순화교육용 작품이었으나, 우리는 이를 통제되고 엄격한 학교생활에 대한 저항의 서사로 읽고 있었다.

이른바 교과서 소설 또는 교과서 시들은, 졸업 후에 문학작품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학에 대한 거의 유일한 경험으로 남게 되는 작품이 되는지라 알퐁스 도데는 김소월·서정주·황순원 등과 함께 교과서가 만든 인기작가가 됐다.  


황순원 '소나기'와 함께 학창시절 버티게
인사동 노점 고서방서 다시 만나 만감 교차
 


그런데 알퐁스 도데의 작품은, 그 순수서정과 상관없이 국가이성들이 좋아하는 국책문학으로 줄기차게 활용, 소비돼왔다. 역시 교과서 소설인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좋은 예다. '마지막 수업'은 국권 상실과 한국어사용 금지라는 아픈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키려는 국가이성의 언어민족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박진영 교수의 논문 '알퐁스 도데와 세계문학'(2015)이 잘 논증하고 있듯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오래전부터 국가에 의해 활용돼왔다. 이 동명소설은 일본에서는 1902년 무렵부터 번역되어 있었고 우리는 육당 최남선이 1923년 4월 자신이 주재하던 잡지 '동명'에 '만세'라는 제목에 '마지막 과정'이라는 부제를 붙여 소개한 바 있다. 작품의 무대인 알자스-로렌은 프랑스령이라기보다는 주민의 대부분이 게르만인들이었던 사실상 독일령이었으니 이곳은 알자스-로렌이라기보다는 엘자스-로트링겐이라 할 수 있으며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실지(失地) 회복이었다. 어떤 관점, 어떤 입장에서 작품을 읽고 어떤 맥락에서 작품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왜 교과서에 실렸을까' 질문 던지는 사고와
거짓권력 안속고 주체성 정립 몇자 덧붙여


인사동 사거리 골목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노점 고서방은 내가 오랫동안 즐겨 찾는 곳인데, 이곳에서 다시 '별'을 만나니 반갑고 만감이 교차했다. 파릇한 까까머리 중학생이 정년을 앞둔 중늙은이가 돼서 다시 '별'과 만난 것이었다. 작품집 '별'에는 도데의 단편소설 36편이 수록돼있다. 서지사항을 간단하게 살피면 출판사는 왕문사(旺文社), 출판연도는 1974년, 번역자는 박동근이다. 판형은 19×13㎝이며, 세로쓰기 조판에, 280쪽 분량의 하드커버다.

'별'은 '소나기'와 함께 우리가 사랑하는 추억 속의 작품으로 남아있어야 할 터인데, 혹 이 글로 인해 그 아름다운 기억이 훼손될 수도 있겠으나 무엇이든 새롭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왜 그렇게 썼을까, 왜 이 작품을 교과서에 수록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열린 사고와 독법이 압도적 첨단기술시대에, 또는 권력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나의 주체성과 의식을 바로 세우는 일이기에 몇 자 덧붙였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