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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이번 봄에 추사고택을 다녀왔다. 새로 문을 연 추사기념관에 볼 자료들도 많았지만, 고택 뒤편 오석산의 바위 곳곳에 남아 있는 추사의 필적을 살펴본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오석산의 바위에는 '시경(詩境)','소봉래(小蓬萊)',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등의 문구가 남아 있었다. 암각서는 청년 김정희가 북경에서 만나 사제 도의를 맺은 스승 옹방강(翁放綱)으로부터 받은 탁본이나 그의 서재에서 본 문구들을 본 뒤의 감동과 새로운 학문적 포부를 돌에 새겨 남겨 놓은 것이다. 방필의 예서로 뚜렷이 남아 있는 바위 글씨를 보면서 김정희와 그의 스승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김정희의 첫 스승은 실학파 학자였던 박제가였다. 박제가가 추사의 재주를 일찍부터 알아보고 사제관계를 맺으면서 북학에 대한 기초적 소양을 쌓았다. 그러나 박제가의 유배가 계속되어 자주 만나지 못했고 유배에서 풀려나자마자(1805년) 사망하여 추사는 스승 없는 학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가 필생의 스승을 만난 것은 1809년 생부 김노경의 자제군관으로 북경에 갔을 때다. 북경에 머무는 동안 청나라 학술계를 이끌고 있던 대학자 완원(阮元)을 찾아가 사제의 도의를 맺었다. 김정희의 스승이 된 완원은 245권으로 구성된 유학 총서 '경주소교감기' 한질을 선물로 주고 고증학과 금석학의 수많은 이론과 학설의 요지를 전해 주었는데, 김정희는 그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조선으로 돌아온 후 평생 학문의 지침서로 삼았다고 한다. 이때가 1810년 1월, 김정희는 25세 완원의 나이 47세 때이다.


완원·옹방강, 총명한 젊은 학자 자질 발견
노대가들 진리탐구 이정표 평생 학술 교류


완원을 만난지 얼마 후에 추사는 청나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 옹방강을 찾아가 필담을 나눈 끝에 사제의 도의를 맺었다. 당시 78세였던 옹방강은 8만점에 달하는 서적과 금석학 자료가 보관된 수장고를 둘러보도록 허락했다. 옹방강도 새로운 제자에게 자신의 서적과 서화, 금석문의 탁본을 선물로 주었으며 특별히 자신의 문하에 있는 학자들도 소개해주었다. 오직 필담으로만 이뤄진 고증학의 대가들과 추사의 첫 만남이 사제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의외로 여겨지지만 필연이기도 했다. 고증학의 체계를 완성한 완원이나 옹방강과 같은 노대가들이 조선에서 온 젊은 학자에게서 총명하고 명민한 자질과 학문적 열망과 의지를 발견한 것은 새로운 희망이었을 터이다.

추사의 스승들은 수천리 타국의 학자들이었지만 진리 탐구의 이정표로 삼아 존중하며 서신에 의존하여 학술 교류를 평생 이어갔다. 두 스승에 대한 태도는 그의 사호에서도 드러난다. 김정희의 대표적인 호는 추사(秋史)이지만 그는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더 자주 썼다. 청나라 학자 완원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자호이다. 그가 쓴 첫 자호는 '보담재'(寶覃齋)였는데 이는 스승 담계(覃溪) 옹방강을 보배처럼 여긴다는 뜻의 자호이다.

익힌 지혜로 조선학문 실사구시 학풍 혁신
글씨 연구 '추사체' 학자들과의 소통 큰 힘


우리 사상사에서 김정희의 공로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역사철학을 정립한 것이다. 공리공론에 몰입하지 않고 사실에 의거하여 진리를 찾는 방법론이다. 이는 공자가 '춘추'에서 추구한 서술하되 창작하지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정신과도 부합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금석역사학의 업적으로 나타났다. 당시까지 무학대사의 비석이라고 알고 있던 북한산비가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밝혀내고, 또다른 진흥왕 순수비인 함경도 황초령비를 탁본을 떠서 치밀하게 해독함으로써 여러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은 일은 그의 대표적 업적이다.

추사 김정희는 스스로 찾은 스승들과 평생을 함께하며 스승들에게 배우고 익힌 지식과 지혜로 조선의 학문과 사상을 실사구시의 학풍으로 혁신하는 큰 줄기를 형성한 것이다. 또한 그가 금석문과 글씨를 연구하여 추사체라는 새 경지를 열어나가는 데도 스승들과 스승들이 소개한 학자들과의 교류는 큰 힘이 되었다. 이 같은 김정희와 옹방강, 완원이 보여 준 200여 년 전 동아시아 지식인의 학문적 동행은 아름다운 사제 관계의 한 전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