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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으로 2차세계대전의 전세는 미국·영국·소련 연합국으로 확실하게 기울었다. 연합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일제는 현실을 외면하고 본토 수호를 위한 1억 옥쇄(玉碎)로 배수진을 쳤다. 허세가 아니었다. 미국은 이오지마, 오키나와 상륙작전에서 일본군의 옥쇄전략에 막대한 인명과 장비를 잃었다. 일본 본토 점령에 따를 손실 규모는 예측만으로도 끔찍했다.

일본은 미국이 망설였던 원자폭탄 투하를 자초했다. 그해 8월 6일 투하된 원자탄 '리틀보이'로 히로시마가 사라졌다. 일제가 영문을 몰라 항복을 망설였다. 8월 9일 원자탄 '팻맨'이 나가사키를 지우자, 쇼와 천황은 8월 15일 방송에서 '대동아전쟁 종결 조서'를 발표한다. 제국의 오판이 없었다면 히로시마의 비극은 없었고, 히로시마 때 정신 차렸으면 나가사키의 비극은 없었다.

히로시마는 반핵의 성지이다. 원폭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폭심지에 있던 생명체는 증발했고, 열과 폭풍은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 42만명의 인구 중 9만~16만명이 수개월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히로시마 군수공장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14만명 중 3만명도 이때 희생됐다. 불과 10일 뒤 해방된 한반도 조선인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지만, 떼죽음 당한 히로시마의 식민지 조선인들은 잊혔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서있다. 히로시마 재일교포들이 십시일반으로 1970년 공원 밖에 건립한 위령비를, 교포들의 끊임없는 청원으로 1999년 공원 안으로 이전했다. 일본은 가해국이면서 저 혼자 피해자 행세를 하느라 원폭 피해 동포들을 2차 가해했고, 고국은 지원은커녕 외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21일 위령비를 참배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첫 참배라니, 놀랍다. 히로시마 동포 3만명의 희생과 원폭피해자 및 유족들을 역사의 그늘에 방치한 모국이라니 부끄럽다. 윤 대통령은 19일 히로시마 원폭 피해 동포들과 만났다. 이 역시 처음이란다.

"슬픔과 고통을 겪는 현장에서 고국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정말 깊은 사과를 드린다." 히로시마 동포들이 대통령의 사과를 고국 동포 전체의 마음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