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태, 사내아이
김종태 作 '사내아이'.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종태는 29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작가로,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우리나라 근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한 그는 정규 미술 코스를 밟지 않고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서양화 기법을 연마했다.

기성 작가들과 다른 김종태의 새로운 화풍은 미술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와 함께 활발한 문필활동을 펼치며 당시 논쟁이었던 '향토색'에 대한 미술비평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소실됐고 총 4점의 작품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사내아이'가 그중 하나이다. 김종태는 소년이 졸고 있는 모습과 같은 일상의 순간에서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일상을 다뤘지만, 정면에서 포착한 단순하면서도 과감한 구성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양화지만 단숨에 그려 나간 듯한 붓 터치와 수채화같이 맑고 투명한 색조에서 김종태의 독자적인 예술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짧은 생 살다간 김종태, 투명한 색조로 일상 표현
야수파적 화법 펼친 구본웅, 동양사상 결합 시도
짙은 향토색 이인성, 후기 인상주의서 영향 받아


구본웅, 불좌상(佛座像)
구본웅 作 '불좌상(佛座像)'.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구본웅은 1930년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서울의 로트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당시 주류인 관학적인 외광파의 화풍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화면 위에 대담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등 기행적 면모를 더하며 '야수파적 표현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1940년대 이후 구본웅은 동양주의 사상에 경도돼 동양 수묵화의 전통과 서구 표현주의와 상징주의 미술을 결합한 동양주의 미술 활동을 전개했다.

'불좌상'은 종이에 수묵을, '여인좌상'은 목판에 유화를 사용해 간결하지만 거침없는 표현적인 필치가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이인성, 여인초상
이인성 作 '여인초상'. /대구미술관 제공

근대기 대표적 화가인 이인성은 보통학교 졸업 후 서동진이 경영하는 대구미술사에 들어가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한국 근대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해 1930년대 '조선의 지보(至寶)', '서양화계의 거벽'으로 불린 이인성은 감각적인 기량과 숙련된 기법을 바탕으로 탁월한 예술세계를 보여줬다. 특히 폴 고갱과 폴 세잔 등 후기 인상주의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그는 한국적이고 향토색 짙은 작품을 주로 그렸다. 인물은 특별히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했으며, 세부적 인물묘사보다 특징을 파악해 빠른 필치로 간결하게 표현해냈다.

전시에서는 1930~1940년대 사이 이인성의 작품 6점을 만날 수 있는데, '복숭아 나무'는 중앙 좌측의 빨강 복숭아가 시선을 끌고 땅에 닿을 듯 늘어진 나뭇가지와 이를 지탱하는 기둥의 구도가 호(弧)를 이뤄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킨다. 이인성 특유의 짧은 붓 터치로 복숭아나무 가지 사이에 드리워진 햇빛과 그늘의 대비가 공간감과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대구미술관 소장품 '여인의 초상'은 이인성이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그린 작품으로 특유의 인물묘사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며, '여인초상'은 다소 굵고 거친 필선으로 담담한 표정의 중년의 여인을 화면에 가득 담아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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