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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1900~1947)은 한국 근대문학의 주춧돌을 놓은 문학사적 거장이다. 경기 화성 출신으로서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인으로 유명하고, 동인지 '백조(白潮)'의 리더로도 문학사에 뚜렷하게 남은 인물이다. 이번에 노작홍사용문학관이 그의 전작을 담아낸 '정본 전집' 전 2권을 펴냈다. 무려 700쪽이 넘는 1권은 그의 전작을 모은 결실로서 시, 소설, 산문, 희곡, 평론 등이 가지런하고 충실한 주해를 달고 재현되었다. 해설, 연구 목록, 추모의 글, 생애 연보, 작품 연보에 이르기까지 현재 확인되는 노작 관련 중요 자료들도 일일이 집성하였다. 특별히 권말에 수록한 육필 시조집 '청구가곡(靑邱歌曲)' 번역본은 노작의 면모를 전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2권은 '노작과 '백조' 문학 연구'라는 제목이 붙은 것처럼, 홍사용과 그의 시대를 연구한 논구들을 모은 결과이다. 정본 전집에서는 가독성과 대중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현행 맞춤법 규정에 따라 당시의 작품들을 고쳐 표기하였다. 다만 노작의 문체적 특성이 드러나는 경우는 현대어 문법과 비록 상치된다 하더라도 노작 특유의 말맛을 일일이 살려 최초 발표지면 표기를 준용하였다. 이러한 방대하고 혁혁한 결실은 우리 문학 연구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나침반이자 인식의 지도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이 책은 노작연구를 위한 자료와 레퍼런스를 온전하게 갖춘 정본으로 탄생한 셈이다. 


박종화는 "노작은 의지가 강했다
괴로워도 남에게 說窮안해" 회고


자연스럽게 노작은 '백조'와 함께 떠오른다. '백조'는 1922년 벽두에 창간되어 1923년 9월 3호까지 나왔는데 동인은 홍사용, 박종화, 노자영, 나도향, 박영희, 이상화, 현진건 등이었다. '백조' 세 권에는 3·1운동 이후 암울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으며, 낭만주의와 유미주의의 경향이 동시에 담겼다. 편집과 발행을 주도한 이는 노작이었다. 홍사용은 줄곧 향토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소재를 낭만적 정조에 실어 노래하였다. 그의 대표작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지금 읽어도 그 무게와 실감과 파급력이 큰 명작이다. 이 시편에 나타난 시적 자아는 '왕'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가 다스리는 영역은 '눈물'로 표상될 뿐이다. 물론 이때 '눈물'은 당대 민족 현실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그래서 주관적 영탄의 반복을 통해 시인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근대문학사 초기의 낭만주의 시운동을 적극 견인한 선구자였던 노작은 낭만주의적 시풍을 띠면서도 그 슬픔의 배면에 나라 잃은 이의 상처를 가라앉혔던 것이다.

그만큼 노작이 써낸 '백조' 시절 작품들은 절망과 실의에서 빚어진 눈물의 서정성을 집약하고 있다. 그것은 낭만주의적 정조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향토적 서정성을 한껏 실어 보여준다. 현실과 삶에 대한 비애가 '동심적인 꿈의 세계', '방랑의 세계', '주검의 세계'에까지 이끌리어 '눈물'로 비화한 것이다.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는 이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또한 그의 시에는 어머니를 향한 동심적인 회귀와 향수를 주제로 한 것이 많다. '어머니에게', '해 저문 나라에',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꿈'을 표제로 하는 것에는 '꿈이면은?',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등이 있다. 이것이 지향하는 세계는 '백조' 동인들이 동경하고 사랑하던 도피처로서 '밀실', '침실', '동굴', '죽음'의 세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일 터이다.

근대초기 문학사 중요한 시인이자
낭만주의 시 운동 선구자 자리매김
다면적 면모 담은 문학관 노고 기억


박종화는 회고록 '역사는 흐르는데 청산은 말이 없네'(1979)에서 '노작은 고고했다. 의지가 강했다. 성격이 개결하고 깐깐했다. 아무리 괴로운 처지에 빠져 있어도 남에게 설궁(說窮)을 하지 아니했다'라고 썼다. 이러한 기록은 노작이 평생 견지했던 성정과 자취를 암묵적으로 웅변해준다. 결국 노작은 근대 초기 문학사에 중요한 시인이자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연극운동가였고, 초기 낭만주의 시와 민요시 운동을 선도했던 선구자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면모를 정본 전집에 담아낸 노작홍사용문학관의 노고를 기억하고자 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