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서점, 헌책방은 업태(業態)가 서점이 아니라 고물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연구자·애서가·학생·서민들에겐 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보물창고요, 귀중한 학술자료를 구할 수 있는 연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서점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로 마음을 터놓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야기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문화사랑방이 된다.
세계 각국에는 대표적인 헌책방과 헌책방거리가 있다. 소장 도서를 펼치면 길이가 18마일(약 29㎞)에 이른다고 해서 18마일의 서가란 별칭이 붙은 뉴욕의 '스트랜드 북스토어', 파주 헤이리 출판단지의 롤 모델이 된 영국 웨일즈의 헤이 온 와이(Hay on Wye), 일본 교토의 진보초 등이 그렇다.
우리도 헌책방거리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헌책방들과 인사동의 고서점들을 비롯해서 부산 보수동 책방거리가 남아있다. 서울 잠실나루역 근방의 '책보고', 인천 배다리의 '아벨서점', 부천의 '대성서적', 지금은 주인이 바뀐 오산과 평택의 '아사달', 천안의 '갈매나무 서점', 창고형 매장인 화성시의 '고구마', 그리고 수원 팔달문 주변의 '남문서점'과 '오복서점'이 그러하다.
이런 서점들은 단순한 헌책방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공간이다. 비록 원하는 책이 있을 때가 드물어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정작 사려는 책은 사지 못하고 예기치 못했던 책들을 잔뜩 사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도 애서가들에게 고서점은 정신적 고향이자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1990년 2월에 문을 열어 33년간 수원 팔달문을 지켜왔던 '오복서점'이 5월 말 문을 닫는다. 새 건물주가 더는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 하고 손님들도 줄어들어 오프라인 서점을 닫는 것이다. 온라인으로는 영업을 지속한다고 하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수원에서 전국구급 오프라인 고서점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오복서점은 알만한 유명인들과 연구자들이 즐겨 찾던 수원의 숨은 명소였다. '홍재전서', '사민필지', 희귀 '사마방목' 등 귀중한 자료들이 이곳에서 발굴되어 박물관, 도서관, 연구기관으로 보내졌다.
시대가 바뀌어도 책은 사람을 길러내는 정신의 보고요, 문화의 중핵이다. 고서점, 헌책방들에 대한 유관 기관의 정책적 배려가 아쉽고 애서가들의 무관심이 서운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