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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미국·일본·중국에 유학한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자, 독립협회 설립 주역으로 그 회장까지 역임했으며, 실용학문 습득과 상공업 진흥을 강력히 주장했다'. 미사여구의 주인공은 누굴까? 구한말 이 땅엔 선각자가 여럿 있었는데 '조선 최초'란 타이틀을 가장 많이 지닌 인물이다. 결정적 스포일러는 애국가 작사가란 설이다. 뭔 설레발을 이리 치나 싶겠지만, 모두 '윤치호(1865~1945)'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일제 말기엔 변절, 귀족원 의원을 지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놀랍게도 그는 60년(1883~1943)에 걸쳐 연간 100쪽이 넘는 영어일기를 썼다. 그 까닭은 'Economy(경제)·Freedom(자유)·Congress(의회)·Individual(개인)·Right(권리)' 등과 같은 서구 문명사회의 이기(利器)를 우리말로 옮길 단어가 당시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미·일·중 유학한 근대지식인 윤치호
'물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며 친일
식민지 조선의 무력감 역설해 표출


미국 유학파하면 으레 친미성향을 갖는데 윤치호는 좀 달랐다. 기절초풍할 근대 국가를 체험한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떠나던 해(1893)의 11월1일자 일기다.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상황에서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낫다고 판독했다. 여기엔 서양제국에 대한 혐오와 동양 일본에 대한 동류의식도 한 몫 했으리라! 구일본 해군이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향해 기도한 것처럼.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일기 속 이 말은 오롯이 윤치호의 삶을 관통한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지녔던 굴욕과 분노, 무력감을 뒤집어 표출했다. 그는 자신의 굳은 신념과 서구의 패권경쟁, 국제질서를 꿰고서 친일 대열에 합류한다. 다만 지론인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당장은 승산이 없으니 와신상담하며 힘을 키워 극일(克日)하자는 역설적 호소는 아니었을까! 윤치호의 영어일기('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2013)를 편역한 김상태는 서문에서 말한다. '조선인이 독립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정치적·군사적 독립투쟁을 자제하고 경제적·문화적·도덕적 실력양성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은 그의 철저한 신념이었다'. 에둘러 말할 것도 없다. 다음 대목에서도 그의 내적 고뇌가 읽힌다. '나는 황인종의 일원으로선 일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조선인으로선 조선의 모든 것, 독립까지도 앗아가고 있는 일본을 증오한다'.

그는 실용학문 습득과 이를 통한 상공업 진흥을 남달리 강조했다. '(상급학교 진학 학생들에게) 문학, 경제학, 철학, 법학과 같은 순수 학문보다는 조선의 공업, 상업, 농업 발전을 내다볼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을 선호해달라고 당부했다'.(윤치호 일기) 당시 윤치호가 유학생 학비와 여비를 보조해주는 첫 번째 조건은 이랬다. '신학이나 과학 또는 실업을 배우는 자일 것'.('동광', 1927) 실제로 그는 미국 남감리교 선교회 후원을 받아 '한영서원(1906)'을 설립, 학생들에게 농업, 목축 등의 실업교육을 했다. 그랬던 그가 왜 이 땅에서 직접 기업을 일구거나 산업·경제를 뒷받침하는 실천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과도한 상상이거나 억울한 주문일 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그에겐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펼칠 '조국'이 없었다. 뼈 때리는 얘기도 일기에 남겼다. '힘이 약한 사람들은 힘이 정의라는 사실을 개탄해 마지않는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힘이야말로 한 국가가 엄청난 값을 치르고 구하는 하나의 상품이다'. 옳고 그름이 정의가 아닌 힘에 의해 결정됨을 당시 첨단 지식인은 꿰뚫고 있었다.

국가 뒷받침할 '상공업 진흥' 강조
강대국 수평적 대응할 힘은 '경제'

일전 중국은 우리를 향해 "체스판 위 강대국의 졸(卒)에 불과하다"고 폄하해 한국인의 분노를 샀다. 대한민국은 4대 열강에 둘러싸인 지구 상 유일의 국가다. 이런 지정학적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길은 100년 전도 지금도 힘뿐이다. 주변 강대국과의 수평적·호혜적 관계를 맺기 위한 지렛대 역시 힘이다. 그 힘을 떠받치는 가장 큰 축이 경제이고, 이 중심엔 기업이 있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