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텅텅'거리는 쇠붙이 두들기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곳. 놀이터는 온데간데 없고, 어른들의 일터인 철공소만 남은 삭막한 한 마을. 여기에 남은 유일한 어린이 '에알룸'은 아이답지 않게 왠지 모를 우울함을 품고 있다. 그런 '에알룸'에게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해주는 로봇 '아루스(사진)'라는 친구가 생긴다. '아루스'의 커다란 몸통은 '에알룸'에겐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공간이다.
단 1㎜ 오차도 허용치 않는 평면 전개도로 3차원 종이 모형 재탄생
다보탑·반가사유상 등 친숙한 작품도 제작… 완벽한 대칭 돋보여
다보탑·반가사유상 등 친숙한 작품도 제작… 완벽한 대칭 돋보여
수원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 펼쳐지는 장형순 작가의 '언덕 위의 아루스'는 이런 쓸쓸하고도 따뜻한 세계관을 종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표현해낸다. 세계관의 핵심인 '아루스'를 주축으로, 종이의 여러 면을 이어 붙여 만든 다양한 창작 캐릭터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날개를 갈망하는 그리스신화 속 이카로스를 연상케 하는 '이드의 선택'은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평생 꿈꾸던 날개를 얻은 '이드'는 하늘을 날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양팔을 잃었다. 날개가 등 뒤로 뻗을 거란 기대와 달리 양팔이 있던 자리에 생기고 만 것이다.
장형순 작가는 "'이드의 선택'은 '이드'가 날개를 얻게 된 첫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날개를 얻었지만 처음 든 감정은 기쁨이 아닌 고통이다. (반대급부로) 두 팔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통에 휩싸인 '이드'가 새처럼 날지, 비처럼 아래로 떨어질지는 그의 첫 날갯짓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창작 캐릭터 외에도 다보탑과 반가사유상 등 종이로 표현된 친숙한 작품들이 많다. 장형순 작가는 종이 반가사유상을 만들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실제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장장 7년에 걸쳐 전개도를 완성했다고 한다.
종이 다보탑은 대칭성이 유독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탑 꼭대기부터 하단까지 좌우 대칭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데, 호수에 비친 모습을 담듯 위아래로도 대칭을 한 번 더 맞췄다.
종이를 사용한 여러 작품은 어린이들이 즐겨 하는 종이 인형 만들기를 연상케 하나, 작업 과정은 극도의 정교함을 요구한다. 단 1㎜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평면 전개도를 완성해야만 비로소 3차원의 종이 모형을 조립할 수 있다.
장형순 작가는 "그간 제작한 전개도만 해도 6천개가 넘는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다"면서 "그러다 보면 (작품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종이 모형 시장이 더 커지지 않을까"라고 웃으며 말했다.
섬세한 종이 모형과 이에 얽힌 장형순 작가만의 따뜻한 세계관이 담긴 '언덕 위의 아루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