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의 극한적 대결이 일상화되고 정치는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여야가 표면적으로는 협치를 입에 올리고 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정치에서 협치와 대화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불신과 냉소가 일반화하고 법안을 둘러싼 여야 인식 차이는 집단간의 불화로 이어짐으로써 사회는 끊임없는 분열과 적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야당의 일방적 독주로 간호사법이 통과되고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제53조에 부여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도 같은 수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법이어 노란봉투법도 거부권 예상
손해배상 청구범위 등 일부 쟁의의 판단
간호사법이나 노란봉투법은 최소한의 접점을 찾아서 합의를 할 수 있는 법들이다. 간호사법 제정은 '지역사회'라는 문구를 문제 삼은 의사협회와 이를 고수하고 있는 간호사협회가 법의 취지와 배경 등에 대해 상호관용의 정신으로 임했다면 여야 합의로 통과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는 엇갈리는 게 정상이다. 충돌지점의 쟁점과 이슈를 절충해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 들이다. 노란봉투법은 여당과 기업들이 강력 반대하지만 국제기준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청노동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을 규정하는 원청으로 넓히고,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무분별하게 인정하지 않고 개별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정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조와 하청 파견 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고 기준을 정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 범위나 일부 쟁의 행위들에 대한 불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여야가 충분히 숙의하고 당사자들의 합의를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야당이 '쟁의 행위의 합법 범주 확대' 부분은 양보하고, 여당은 원청 책임 부여와 손해배상 제한 부분을 받아들인다면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의석을 무기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야당과 일단 거부권부터 행사하고 보는 여권 모두 갈등을 겪는 지점을 해소해 나가려는 노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일방에 대한 비판은 의미가 없다. 자신을 지지하는 극단적 지지층을 의식하는 편향과 배제의 정치를 일상화함으로써 정치적 생존을 구걸하는 지금의 양당 체제는 아무런 해결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몰각하는 정당들의 퇴행을 막지 못하면 한국사회의 발전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여야 숙의하고 접점 모색할 여지 충분해
계속된 갈등… 적대적 공멸 이를수 있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공히 내년 총선에서 상대 정당의 문제점을 부각시킴으로써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하책을 구사하고 있다. 민주당의 가상자산 관련 의혹과 돈 봉투 의혹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할 기미가 없다. 이는 정치력 부재의 여당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 민주당 역시 여당과 마찬가지로 지지율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의 모순에서 오는 입법과 행정의 교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지금의 정치불신이 적대적 공생이 아닌 적대적 공멸에 이를 수 있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정치사회학자인 슈미터와 칼에 의하면 민주주의란 '통치자가 공적영역에서 그 행위에 대해 책임지도록 시민들에 의해 제약되는 통치'다. 의석을 믿고 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야당이나 거부권을 무기로 합의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여당 모두 심판의 대상이다. 민심의 향배에 아랑곳 하지 않는 정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