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떼이면 본인(공인중개사)이 책임지겠다고 해서…."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의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공인중개사들도 범행에 적극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31일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 심리로 열린 건축업자 남모(61)씨 등 10명에 대한 4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들은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믿고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증인 A씨는 "지난해 3월 전세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는 해당 집이 경매 절차에 넘어갔던 전력이 있었던 것을 알면서도 '집주인은 이자도 밀리지 않았다', '피해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면서 계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남씨 측 법률대리인은 "계약 당시 남씨의 존재를 몰랐고,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남씨가 아닌 공인중개사에게 속은 것이 아니냐", "근저당 설정 여부 등 위험성을 알지 않았느냐"는 등 피해자인 증인들을 신문했다. 

 

이날 증인 신문은 지난 4월 5일 첫 재판이 열린 지 두 달여 만에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서 일부 피고인의 법률대리인은 "아직 기록 검토를 다 하지 못했다"며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남씨 등 18명에 범죄집단조직 혐의
피해자들, 이들 범행 적극 가담 증언
특경법 적용시 최대 무기징역 선고


이를 두고 박순남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경인일보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도 휴가를 내고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며 "그러나 남씨 일당의 법률대리인들은 혐의를 부인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마련된 '전세사기 특별법'은 대출 지원 중심이어서 피해 구제책으로는 미흡하다. 하루빨리 일당을 엄벌해 은닉재산을 환수하고 피해회복에 힘써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조만간 남씨 일당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기소하는 방안(5월23일자 6면 보도)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남씨 등에게 최대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으며, 지금의 단독이 아닌 합의부가 재판을 맡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승재현 한국형사연구원 연구위원은 "단독에서 합의부로 재판이 병합되는 과정에서 최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도 있다"며 "청년 등 많은 피해자가 나온 만큼 이를 고려해 법원이 신속히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남씨와 공인중개사 등 10명은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161명에게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경찰은 남씨를 비롯한 51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추가 송치했는데, 이 가운데 남씨 등 범행에 가담 정도가 많은 18명에게는 범죄집단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최근 인천에서는 남씨로부터 사기 피해를 본 세입자들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