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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우리 교실'(타데우시 스와보지아네크 작, 전용환 연출, 6월2~1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폴란드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1928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 동안 폴란드의 한 마을이 배경이다. 무대는 버려진 교실이다. 이제는 유령이 된 같은 반 친구들 10명의 이야기를 통해 폴란드의 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극적 상상력의 출발은 교실이다. 교실은 표면적으로 폴란드의 역사를 학습하는 공간이다. 1교시부터 14교시까지 이어지는 동안 관객은 자연스럽게 폴란드의 역사를 학습하게 된다. 동시에 교실은 폴란드의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 그 자체이자 그 사람들의 공간이다. 그 교실에 10명의 아이들이 있다. 반은 폴란드 아이들이고 나머지 반은 유대계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이 있다. 구두장이, 농부, 의사, 선생님, 마부, 군인, 재봉사, 영화배우, 그리고 조종사. 꿈은 서로 달랐으나 여덟 살 무렵의 아이들은 함께였고 하나였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시대의 아이들'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우리들은 시대의 아이들, 바야흐로 시대는 정치적.//너와, 우리와, 너희의 모든 일들, 낮과 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이 모든 것이 정치적.//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의 유전자에는 정치적인 과거가, 우리의 피부에는 정치적인 색채가, 우리의 눈동자에는 정치적인 양상이 담겨 있다.//…그동안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동물들은 죽었고, 집들은 불탔고, 들판은 폐허가 되었다." 연극 '우리 교실'이 왜 교실과 교실의 아이들에 주목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법칙과 별을 바라보는 칸트를'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으나 이후 아이들의 삶의 경로는 서로 달랐다.


'우리 교실' 폴란드 현대사 압축
역사 학습공간 '교실' 극적 상상력


무엇이 함께 하나였던 아이들을 갈랐을까. 무엇이 동무에서 적으로 그들을 갈랐을까. 무엇이 그들을 고문, 강간, 그리고 학살에 이르도록 만들었을까. 폴란드 아이들과 유대계 아이들 사이에 생긴 작은 균열이 마침내 폭발하여 자기 자신과 동무의 삶 전체를 잡아 삼킨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종, 종교, 민족,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그들을 갈랐다고 말한다고 해서 소련의 점령, 나치 독일의 점령, 그리고 냉전 시기 소련의 위성 국가를 거치는 동안의 폴란드를 설명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상의 작은 폭력이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폭력으로 자라났다. 그 폭력은 혐오를 자양분 삼아 싹을 틔우고 증오를 먹고 자라나더니 종래에는 집단학살에 이르러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10명의 아이들은 아이에서 어른을 거쳐 유령이 되는 동안 그 폭력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그 사이 어른이 된 아이들은 깨닫는다. "우리 이웃들이죠." 이웃이 괴물로 바뀌는 시간보다 더 끔찍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괴물을 발견할 때이다. "복수는 널 좀먹으니까." 괴물을 물리치려다가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 그 반복하는 폭력의 미로에 갇힌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얼마나 힘겨운가. 그렇게 아이들은 하나하나 유령이 되었다.

이웃은 언제 적이 되는가. 이 물음은 뒤집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이웃에게 적이 아닌가. 동무로 출발한 '우리 교실'의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었다.

폴란드-유대계 아이 삶의 경로 달라
'가해자이자 피해자' 폭력 반복 미로
독립군·일본군 된 우리 역사 겹쳐


우리의 교실도 유사하다.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한 동무 중에서 누구는 독립군이 되었고 누구는 일본군이 되었다. 누구는 국군이 되었고 누구는 인민군이 되었다. 이 작품을 과거 폴란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한국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소련과 독일의 점령에 놓였던 폴란드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겹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에 놓인 분단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물음이 있어서다.

폭력의 악순환은 언제 멈추는가. 폭력의 원인보다 더 끈질기게 붙들어야 하는 물음이 있어서다. 폭력의 악순환은 어떻게 멈추는가. 연극 '우리 교실'은 그 반복하는 폭력의 악순환을 막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괴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다시 볼 수밖에 없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