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과외앱을 이용해 또래 여성을 엽기적으로 살인하고 유기한 정유정의 신상공개가 결정됐지만, 포토라인에 선 범인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렸다. 공개된 증명사진으로는 "살인해보고 싶었다"는 사이코패스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특정강력범죄 처벌 특례법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를 발생시킨 범죄의 증거가 충분할 때 피의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대개 피의자의 증명사진이 공개된다. 한나 아렌트의 통찰이 아니더라도, 악당의 얼굴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나같이 평범한 이웃의 표정이다. 피의자 신상공개 목적은 재범방지와 범죄예방이다. 형기를 마친 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범죄자 정보로 시민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잔혹한 성범죄자들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등록시켜 공개하는 이유와 같다. 그런데 피의자 신상공개 기준이 너무 엄격해 제도의 효용이 무의미해졌다는 지적이다. 포토라인에서 얼굴을 가리는 피의자들의 증명사진 대신 머그샷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빗발친다.
유튜버 '카라큘라 탐정사무소'가 지난 2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의 신상을 공개해 논란이 뜨겁다. 가해자는 생면부지의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해 중상을 입혔다. 검찰이 20년을 구형한 1심에서 1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했다. 그런데 폭행 후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가 추가돼 2심 공소장이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됐다. 검찰은 징역 35년형을 구형했다.
피해 여성은 처음부터 신상공개를 원했다. 가해자를 아는 자신에겐 무의미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다 했다. 하지만 경찰은 검찰로 넘어갔다며, 검찰은 재판중이라며 거부했다. 유튜버는 "신상정보 공개로 피해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분담해 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법적 처벌을 감수하고 신상공개를 감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법치국가에서 사적 제재는 금지돼야 한다. 하지만 30세의 가해자는 전과 18범이다. 폭력 전과가 대부분이다. 18번의 사법처리과정에서 신상공개가 결정됐다면, 재범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었고, 피해자의 악몽은 없었을지 모른다. 피해자는 중년에 출소할지 모르는 범인이 두려울 테다. 문동은의 사적 복수가 대중의 환호를 받고, 유튜버가 현실에서 사적 제재를 감행하기에 이른 사법 불신의 현주소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가 됐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