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윤리적 관계를 탐구해오던 버틀러가 코로나19 시대를 사유한 내용을 담은 책을 들고 왔다.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는 현상학(인간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의 구조를 다루는 학문)을 기반으로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과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이론을 발판 삼아 논의를 펼쳐 나간다.
버틀러는 퐁티의 철학을 책의 뼈대로 삼는다. 퐁티는 유물론(경험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과 관념론(만물은 인간이 지각하는 범위 내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입장)의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혼합한 개념을 제시한 학자다.
퐁티는 인식의 주체와 대상인 객체 사이는 분리돼 있지 않고 서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사물과 관념은 선후관계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책은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회를 구성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이렇게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엮인 사회에 창궐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서로 불평등하게 연결돼 있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말한다.
버틀러는 우리는 서로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팬데믹의 윤리성'을 살펴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