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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이덕무(1741년 6월11일~1793년 1월25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서예가다. 호는 영처(處)·형암(炯庵) 등 무려 40여 개나 된다. 조부는 이필익, 부친은 이성호, 모친은 박사렴의 딸 반남박씨다. 처는 백사굉의 딸 수원백씨이며, 아들은 이광규, 사위는 유선과 김사황이다.

그는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박제가와 유득공, 그리고 서상수와 성대종 등 서얼들과 어울리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북학파였던 홍대용, 박지원, 이서구 등 사대부와 강세황, 심사정 등의 서화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자신을 '책 읽는 바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학문하기를 즐겨 문자학과 금석학, 그리고 서화에 조예가 깊었다.

혈기 왕성한 20대부터 서얼시사집단인 백탑시사(白塔詩社)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을 주도했다. 1777년 간행된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 청나라에 알려져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듬해에는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인 서장관으로 왕복 5개월 동안의 사행 기간에 보고 들은 각종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기균, 이조원, 반정균 등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그는 관직에 있는 15년 동안 정조로부터 520 차례의 하사품을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정조는 그의 문집을 간행하게 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관직을 그대로 잇게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연암 "문학이 추구해야할 두가지"
갓 태어난 아이가 울고 웃는 '천진'
곧장 울음이 터져 속일수없는 '진정'


이덕무는 천성이 소심하고 온건하며 섬세한 사람이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몸은 가냘팠다.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영양실조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는 독서광이었으며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아 귀한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멀고 가까운 것을 따지지 않고 빌려다 베꼈다. 추위로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 부었는데도 베껴 쓰기를 쉬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연암 박지원은 청장(靑莊)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청장은 해오라기의 다른 이름이다. 해오라기는 맑고 깨끗한 물가에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서 있다 먹이가 스스로 다가오면 생각난 듯이 잡아먹지만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연암이 그에게 준 이름 청장은 욕심 없이 담백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에 바치는 헌사였을 것이다.

그는 '진짜 기쁨과 진짜 슬픔이 담겨야 살아 있는 진짜 시다. 어린 아이가 갓 태어나면 운다. 울다가 문득 웃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유도 모른다. 이것이 진짜 시다. 두 살 세 살 때는 밥이 많으면 웃고 적으면 운다. 정에 접촉되어 펴는 것이 반드시 까닭이 있다. 이것은 진짜에 가까운 시다. 다 크면 귀인에게는 아양을 떨어 미쁨을 받으려 애쓰고 별 친하지도 않은 친구를 조문 가서도 슬픔을 꾸민다. 이것은 가짜 시다'라고 일깨운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덧붙인다. '진정이 펼쳐 나옴은 고철이 산 것처럼 못 위로 뛰어 오르고 봄날 죽순이 성난 듯 땅에서 솟는 것과 같다. 정을 가짜로 꾸밈은 매끄러운 돌에 먹물을 바른 것이나 맑은 물에 기름을 동동 뜬 것과 같다. 칠정 중에서도 슬픔이야말로 곧장 터져 나와 속이기가 어렵다. 슬픔이 심해 곡하기에 이르면 그 지성스러움은 막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진정한 울음은 뼛속 까지 사무치고 거짓 울음은 터럭 위로 떠다닌다. 온갖 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를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모두 담아낸 이덕무의 살아있는 詩
욕심없는 그의 삶에 호 '청장' 헌사


그는 어린이의 천진과 처녀의 진정이야말로 문학이 추구해야 할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천진과 진정을 잃은 시는 죽은 시다. 이덕무의 시는 살아 있는 시다. 천진과 진정이 있기 때문이다. 절구(絶句) 한 수다.

'저녁볕 쇠귀를 붉게 비추니/산 보며 푸른 꽃을 뜯어 먹는다./잎 다 진 나무에 제 등을 긁자/살랑살랑 너울너울 잎이 뒤챈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