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장관의 '빨간 책'으로 화제가 됐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패권전쟁을 투키디데스가 현장에서 기록한 역사서다. 지중해의 전통 강국 스파르타와 신흥 강국 아테네의 패권 전쟁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냉전의 역사적 전형으로 회자된다. 미·소 냉전 때는 물론 지금 미·중 신냉전 시대의 지도자들이 열독하는 이유다.
책에 등장하는 '멜로스의 대화'는 아테네가 스파르타 동맹국인 멜로스에게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는 외교협상 장면을 기록한 에피소드다. 멜로스 대표는 정교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설득한다. 하지만 아테네 대표는 이리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항복만이 살 길이라고 을러댔다. 협상은 결렬됐고, 멜로스는 정복당해 해체됐다. 역사의, 특히 냉전시대의 정의(正義)는 강대국이 정의(定義)한다.
외교 전랑(戰狼)은 신냉전 시대에 중국의 선봉이다. 반미동맹 구축과 미국의 고립을 목적으로 이리 같은 전투력을 발휘한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도 전형적인 전랑이다. 문재인 정권 때 감췄던 이빨을 지난 대선 때 드러냈다. 윤석열 후보가 한미 동맹을 강조하자, 국내 일간지에 공식 반론을 기고했다. 주재국 대선에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안하무인이 반중 감정을 키웠다.
싱 대사가 지난 6일 작정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했다. 현재 한중 관계의 어려움은 중국 책임이 아니란다. 중국 경제성장의 보너스를 계속 챙기려면 중국과 협력하란다. "미국 승리와 중국 패배에 베팅을 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말은 살벌했다. 꾸짖고, 회유하고, 협박하는 시대착오적 외교 수준이 19세기 제국주의를 넘어 기원전 아테네 시절에 닿았다.
대한민국 제1야당이 판을 깔아줬다. 국장급 싱 대사의 대사관 면담 초청에 이재명 대표가 응했고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명분은 일본 방사능 처리수 방류에 대한 공동대응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자신 앞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물어뜯는 싱 대사의 연설을 조신하게 경청하는 처지가 됐다. 대변인들은 받아쓰느라 머리를 박았다.
이 대표의 재판 리스크를 당 대표 경선 돈봉투 사건이, 이를 김남국 코인이, 또 이를 이래경·권칠승 막말이 덮더니, 이마저도 싱 대사의 전랑외교가 덮었다. 이 대표에겐 짭짤한 외교적 성과일지 모르겠다. 외교적 굴욕인지, 참사인지 여부는 지켜본 국민이 판단할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