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인 내가 분필을 두려워하다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시골에서 자란 내가 서울로 전학해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한 번은 고향의 어머니가 학교에 와 담임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3학년이었으니 아마 입시 관련 학부모 상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을 만나고 난 뒤 어머니는 담임이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선생님 양복 소매에 분필 가루가 묻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의 소맷단에 묻어 있는 분필 가루를 보고 훌륭한 선생님이라 판단한 것이다. 한평생 한복 짓는 일을 업으로 삼아 언제나 깔끔한 옷매무새와 청결을 강조하셨던 어머니였는데, 그런 어머니가 뜻밖에도 미처 털어내지 못한 옷소매의 분필 가루를 훌륭한 선생님의 조건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학창시절 담임 소맷단에 분필가루
어머니 눈엔 '훌륭한 선생님' 조건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가 강단에 서면서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직업상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자주 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두말할 것 없이 필기구다. 옛사람들은 지필묵연(紙筆墨硯, 종이·붓·먹·벼루)을 문방사우(文房四友)라 부르며 아꼈지만 지금의 내게는 종이만 그대로일 뿐 붓과 먹, 벼루 대신 연필과 지우개, 책갈피 따위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글을 쓸 때는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더 많기에 한동안 내가 가장 자주 손에 쥐는 도구는 연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대목에 밑줄을 긋거나 내 의견을 적을 때 연필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단에 서게 되면서 자연히 연필보다 분필을 손에 쥐는 일이 더 많아졌다.
강의할 때 판서를 많이 하는 편인 나는 분필을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칠판에 썼다지웠다를 반복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허연 분필 가루가 볼썽사나울 정도로 여기저기 묻는다. 어쩌다 실수로 분필 지우개를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그날은 허연 분필 가루가 바짓단까지 점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지저분한 모습이야말로 내가 강의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래서 강의가 끝나고 나면 분필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도 스스로 훌륭한 선생님의 한 가지 조건을 충족했다는 생각에 흐뭇해했고, 덧붙여 어머니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시면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부러 닦아내거나 털지도 않곤 했다. 아무려나 분필 가루 묻지 않은 깨끗한 선생이란 흙 묻지 않은 농부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 아닌가.
나도 강단에 서며 더러워진 소매
흙 묻은 농부와 다름없는 '훈장'
전자칠판으로 바뀌며 사라진 모습
꽤 오랜 세월 강의하면서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언제나 마지막으로 분필을 챙겨왔다. 분필을 챙기면 강의 준비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칠판이 화이트보드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전자칠판으로 바뀌면서 손에 분필을 잡을 일도 없고 옷에 분필 가루가 묻을 일도 사라졌다. 요즘은 컴퓨터를 부팅하고 스크린을 내린 다음 빔 프로젝터를 켜면 강의 준비가 끝난다. 강의가 끝나도 지저분한 분필 가루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이제 훌륭한 선생님을 알아보는 한 가지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꼭 훌륭한 선생임을 증명하고 싶어서는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분필가루를 날리며 강의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한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