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독립유공자 서훈' 가능성을 열었다. 인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정치계 거목인 조봉암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2011년 간첩죄 누명을 벗고 복권된 이후에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속 보류됐다.
14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주요 인사가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조봉암 선생의 서훈 문제를 풀어달라는 뜻을 전했다.
박민식 장관은 지난 13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봉암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에 대해 "열린 자세로 죽산에 대해 한번 재평가할 때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죽산은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해 토지개혁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며 "광복 후 토지개혁에 성공한 쪽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또 박민식 장관은 "역사적 인물에게 그림자가 있더라도 빛이 훨씬 크면 후손들이 존중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누구든지 예외 없이 접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림자 있어도 빛이 크면 존중을"
유족들, 3차례 신청 번번이 보류돼
보수정권 언급 눈길 "정책 연결해야"
'진보당 사건'으로 간첩죄 누명을 쓰고 1959년 국가로부터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 선생은 2011년 재심의 무죄 선고로 복권됐다. 조봉암 선생 유족들은 이때부터 세 차례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고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 자체로도 서훈을 검토했으나, 번번이 보류됐다.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의 공적이 뚜렷한 조봉암 선생의 서훈 보류는 해방 전 인천에 살던 시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41년 12월23일자 신문에 실린 한 줄짜리 '국방성금 150원 헌납' 기사 때문이다. 이 신문 기사를 근거로 조봉암 선생의 친일 행적이 있다는 것인데, 해당 기사는 부정확하다고 여러 연구자는 주장한다.
우선 해당 기사에 나오는 조봉암 선생의 주소부터 틀렸으며, 당시 죽산은 현재 화폐 가치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150원의 성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는 상황임은 여러 증언으로 명확히 입증된다. 오히려 해당 기사가 일본의 공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조봉암 선생 유족은 서훈 보류가 이어지면서 현재는 서훈을 신청하지 않고 있다. 보수진영 정권의 보훈부 장관이 조봉암 선생 재평가를 언급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올해 3월부터 대대적인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장관의 조봉암 선생 언급은 개인 의견을 피력한 것인데, 장관 의견인 만큼 정책으로 이어질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박민식 장관의 생각을 보훈부가 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며 "죽산 선생의 서훈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한편, 최근 박상은 전 국회의원 주도로 조봉암 선생의 고향 강화도에서 '죽산조봉암농지개혁기념관건립위원회'가 창립해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조봉암 선생은 항일운동에 투신하다 해방 이후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제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2위를 차지하는 등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오르기도 했으며, 평화통일론을 주창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