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보다: 여름 2023┃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72쪽. 3천500원
'꼴찌', '패자', '비정상'. 신간 '소설 보다: 여름 2023' 속 세 편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얼핏 보면 모두 후자에 해당한다.
수영 강습 때마다 뒤처져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꼴찌(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가했지만 '연애 시장'에서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는 패자(김기태 '롤링 선더 러브'), 출근 때마다 문신을 감추고 '남다른 사랑'을 하는 정상에서 벗어난 교사(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사회가 멋대로 규정한 편견에 대항… 단편소설 3편 수록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수영 초급반 배경
강사에게 미움받던 두 주인공 목소리 오히려 주변서 동화
'소설 보다: 여름 2023'의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의 주요 무대는 동네 수영장의 강습 초급반이다. 킥판을 들고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주호'는 매번 꿋꿋이 선두를 고수한다. 의도치 않게 다른 수강생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탓에 그는 수영 강사에게 미움받는 존재다.
그런가 하면 '희주'는 주제를 알고 일찌감치 하위권들이 모이는 맨 끝줄로 향하는 인물이다. '눈치 없는 남자'와 '욕망 없는 여자'. 어떻게 보면 이 둘은 자신만의 속도로 수영장을 그저 묵묵히 헤엄칠 뿐이다.
하지만 이 둘을 '꼴찌'라고 못박으며 다른 수강생들에게 눈살 받게 하는 건 다름 아닌 강사다. 주호가 맨 앞줄을 포기하지 않을수록, 강사는 그를 '다수에게 방해되는 꼴찌' 취급하며 분위기를 몰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한 강사가 수업 중 주호와 희주에게 욕하며 화내는 일이 발생한다. 화에 도취한 강사는 시뻘게진 얼굴로 분노를 참지 못한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주호는 저벅저벅 강사에게 걸어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가 아닌 "괜찮으세요?" 담담하지만 걱정스런 진심이 담긴 주호의 목소리에 동화된 건 다른 수강생들이었다. '민폐 덩어리' 주호에게 모멸감을 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동료 수강생들은 다 같이 강사에게 몰려가 항의한다. "대체 저 두 사람이 뭘 잘못했어요?"
누군가에게 눈초리 받기 딱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인물들은 순순히 멸시당하지 않는다. 특유의 '눈치 없음'과 '무해함'을 무기로 폭력적이거나, 사회 다수가 멋대로 규정한 편견적인 시선에 은은하고도 다정하게 맞선다.
뒤이어서 펼쳐지는 작품 '롤링 선더 러브'와 '재와 그들의 밤' 역시 마찬가지다. 무겁기보단 유쾌하며, 치열하게 투쟁하기보단 왠지 모르게 평화로운 세 소설은 기분 좋게 책장을 덮게 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