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학자 배리 글래스너는 저서 '공포의 문화(THE CULTURE OF FEAR)'에서 공포를 이용해 대중을 조종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공포행상인으로 명명했다. 언론, 정치인, 압력단체, 광고회사 등인데 "시청률, 표심, 기금, 이익을 얻기 위해 위험들을 계속 부풀리고 퍼뜨린다"고 했다.
책에 등장한 '우주전쟁' 소동은 조작된 공포의 대표적 사례다. 1938년 CBS라디오가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드라마 '우주전쟁'을 방송했다. 100만여명이 공포에 휩싸이고, 1천여명은 피난하는 대소동이 발생했다. 방송 중에 네 번이나 '허구'임을 알렸는데도 그랬다. 과학자, 교수, 정부관계자 등 연기자들의 연기가 그럴듯해 드라마의 현실감이 생생했던 탓이다.
저자는 "공포의 대상이 달라져도 공포를 퍼트리는 전략은 어김없이 똑같다"며 "반복하고 호도하고 개별사고를 모아 사회적 흐름으로 부풀리기 같은 구닥다리 기법으로 공포행상인들은 여전히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개탄한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는 광우병 공포 때문이었다. '뇌송송 구멍탁' 공포에 질린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켰다. 진보 진영 정당·시민단체·언론이 거들었고, 집회의 흥을 돋운 가수, 배우들은 '개념 연예인'으로 등극했다. 인간 광우병 가능성을 부정하는 주장과 통계를 막연한 공포가 압도했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를 비롯한 수입 쇠고기 아니면 서민들은 미각과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광우병 걸린 한국인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이번엔 핵수산물이다. 일본이 핵오염물질 처리수를 방류하는 순간 우리 바다 먹거리는 모두 오염된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아예 "핵폐수"라고 단정했다. 방류로 인한 해양 오염은 무의미한 수준이고, 한국도 중국도 삼중수소를 바다에 희석한다는 과학자 설명에 귀를 닫는다.
핵수산물 공포를 기정사실로 여기면, 미국산 쇠고기 안 먹으면 그만이었던 광우병 공포 때와는 차원이 다른 피해가 발생한다. 소금, 젓갈, 어패류, 해조류 등 바다 먹거리는 우리 식탁의 알파요 오메가다. 해류가 바다를 가리지 않으니 태평양 참치로 만든 캔참치도 못먹고, 수산물 수입도 불가능하다. 바다에 생계를 건 국민 전체가 삶의 터전을 잃는다.
과학과 공포가 맞서고 있다. 어느 편에 서든 수백만의 생계를 결정짓는 대립이다. 누구든 자기 발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