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전체 시내버스 노선의 약 40%를 '저상버스' 의무 도입 예외 대상으로 정하면서 현장 답사 등 검토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저상버스가 정상적으로 운행 중인 노선까지도 이 대상에 포함됐다. 인천시가 저상버스 도입을 기피하는 업체들의 요구를 검증 없이 수용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20일 오전 11시께 인천 동구 송현동 한 정류장에서 A노선 버스를 기다렸다. 해당 노선은 버스 회사가 이 정류장 부근은 경사가 급한 데다, 과속방지턱이 있어 저상버스 도입이 어렵다고 해서 인천시가 올 1월 초 승인해준 노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정류장에 있는 버스 도착 알림 모니터에는 휠체어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정류장에 정차하는 B노선과 C노선의 저상버스가 5분 뒤 도착한다는 표시였다. 같은 정류장 인근을 운행하는 다른 노선들은 저상버스를 도입해 운행 중이었다.
A노선 버스가 정차하는 다른 정거장으로 이동해 봤다. A노선을 운영하는 버스 회사는 이곳에 있는 고원식 횡단보도(과속방지턱 형태로 만들어진 횡단보도) 때문에 저상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고 했지만, 횡단보도를 지나 우회전하는 B노선의 저상버스를 볼 수 있었다.
앞서 시내버스 40% 예외 대상 지정
업체 서류 현장답사 등 미비 지적
市 "연초 승인 안건 전면 재검토"
지난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개정되면서 올해부터 버스를 교체할 경우 저상버스를 의무 도입해야 한다. 올 1월19일 개정된 시행규칙에선 만약 도로 환경 등의 이유로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교통약자 관련 법인·단체와 교통분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예외 노선을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시행규칙이 개정되기 전에 전체 210개 버스 노선 중 76개를 예외 노선으로 정했다. 당시 교통약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장애인 단체의 비판을 받았다(6월7일자 6면 보도).
인천시가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제공한 '저상버스 운행 부적합 노선 신청 및 결과' 자료를 보면 76개 간선·지선버스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 회사들은 고원식 횡단보도나 급한 도로 경사, 과속방지턱 설치, 좁은 도로 환경 등을 이유로 저상버스 운행이 어렵다며 의무 도입 예외 노선으로 정해달라고 인천시에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시는 현재 저상버스가 운행 중인 도로와 구간이 겹치는 일부 노선도 예외 대상으로 정했다. 버스 업체의 신청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승인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종인 사무국장은 "인천시는 과속방지턱, 고원식 횡단보도 등의 설치 유무만 보고 저상버스 도입 제외 노선을 정했다"며 "과속방지턱과 고원식 횡단보도 높이, 경사로의 각도 등 세부 기준을 명확히 하고, 노선 환경 점검 과정에서는 반드시 교통약자와 동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올해 초 승인한 저상버스 도입 예외 노선을 전부 재검토하겠다"며 "저상버스 도입을 늘리기 위한 교통 환경 개선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