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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대표
글로 소통하는 시대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매체가 일상의 중심권으로 들어온 뒤 글쓰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문자와 카톡, 메신저를 비롯한 개인 간의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역시 글쓰기를 소통의 기본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각만큼 써지지 않을뿐더러 막상 심각하게 고민해서 써놓고 보면 비문이나 어색한 표현이 속출한다. 혼자만의 공간에 쓴다면 모를까 공개된 공간에 올리는 글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만 한다고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글쓰기라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엄습하면서 되레 글쓰기로부터 멀어진다.

글쓰기 책의 출간이 봇물인 건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글쓰기 책을 읽어봐도 도통 글 실력은 늘지 않는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아쉽고 답답하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쓰기전 왜 쓰고 어떤 글 쓰려는지
뚜렷한 목적 두고 충분히 생각


글쓰기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닮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막상 풀려고 하면 벽에 부닥친다. 책 몇 권 읽는다고 갑자기 글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이 쓰면 는다. 계속 쓰다 보면 감각이 생긴다. 감각을 얻기 위해 꾸준히 써야 하고,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또 꾸준히 써야 한다. 근데 매일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 글쓰기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데 대체 무엇을 쓴단 말인가.

첫째,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덮어놓고 글쓰기의 방법을 찾기보다 왜 쓰는지, 어떤 글을 쓰려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글을 쓰기 전에 충분한 사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각하지 않고 쓰면 제대로 된 글이 될 리 없다. 쓰기 위해 억지로 생각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생각을 영글게 하는 건 역시 독서다. 독서를 통해 받아들인 타인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한 사색이 필요하다. 사색이 곧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게 쇼펜하우어의 주장이다. "표현이 모호하고 불명확한 문장은 정신적 빈곤의 반증이다. 이처럼 표현이 모호해지는 이유는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불명료하기 때문이며, 작가의 사상이 불명료하다는 것은 사색의 오류, 모순, 부정에서 시작된다."

둘째, 올바른 독서가 중요하다. 좋은 글쓰기를 바란다면 먼저 잘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많이 읽는 게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건 '천천히 읽기'와 '변증법적 읽기'다. 프랑스 인문학자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유유 간, 2014)를 중심으로 독서론을 살펴보자. 우선 천천히 읽어야 한다. 느리게 읽기의 미덕은 다양하다. 느리게 읽으면 책에서 받은 첫인상에 속지 않는다. 자신을 몰각해 버리는 일이 없다. 게을러지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할 수 있다. 천천히 읽기와 더불어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중요하다. 이른바 '거듭 읽기'다. 거듭 읽으면 작가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생긴다. 작가의 생각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체를 즐기게 된다.

셋째, 글쓰기는 꾸준함이 중요하다. 글쓰기는 단지 기록이 아니라 중요한 사색의 과정이다. 좋은 글이란 멋진 글이나 유려한 문체를 가진 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분명하게 담긴 글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아름다운 문장이란 없다. 다만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된 단문의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이란 모든 과잉을 제거한 것'(미켈란젤로)이다. 채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이리저리 비틀고 휘젓지 말고, 생각을 오롯이 담은 간결한 글이라야 좋은 글이다.

천천히 읽거나 거듭 읽기로
올바른 독서 습관도 중요
쓰며 줄기차게 고치기 '요체'


좋은 글이란 한 번에 완성되는 법이 없다. "결정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르헤스의 지적은 그런 의미이다. 글은 끊임없이 갈고닦는 것이지 한 번에 완벽해질 수 없다. 결국 꾸준히 쓰고 줄기차게 고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요체이다.

/최준영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