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에 대한 발언은 더욱 심각하다. 지금 한국의 교육은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의 파멸적 현상은 중등교육의 붕괴로 이어지고, 이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대학입시제도이다. 20여 차례 개정했지만 현재의 입시제도는 교육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미시적 규정만 변경시켜온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사교육이 번창하는 것은 대입 영역과 카르텔을 형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편적인 입시제도와 극한적 입시경쟁 때문이다. 반교육적이며 심지어 반인간적이기까지 한 학벌사회에서, 단 한 차례의 시험으로 대학이 결정되면 이후의 사회생활에서 그 순위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 대학 입시에 전력투구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 경제적 양극화, 불평등과 빈곤 문제 등은 이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체제가 유지되는 한 어떻게 제도를 바꾸어도 극심한 입시지옥과 극단적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역대 정부 대학운영·입시제도 개편
'이현령 비현령식' 미봉책에 그쳐
자본 재생산 간주 학문·지성 죽어가
지금 한국의 대학은 죽어가고 있다.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과 함께 나아가야할 방향을 전망해야할 대학은 단편적 지식 생산과 자본의 요구에 굴종한지 오래다. 성찰적 지성이 사라진지는 옛날 옛적이지만, 그나마도 필요한 현실분석이나 미래 지향성에 대한 제시를 현실의 대학에서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은 서열화된 대학 체제와 그 영향력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데 성찰적 지성과 학문 본연의 의미가 유지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대입 경쟁은 이러한 계급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전면적이며 거의 일회적인 기회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성공은 건국 이래 근대화를 추동했던 교육제도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늦어도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그 역기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 가운데 누구도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기껏 대학 설립과 운영에 대한 단편적 제도 개선이나 대입 입시제도의 이현령비현령식 개편에 그쳤을 뿐이다. 그 자리에 교육과 학문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한 교육관료와 제도정치가 대학을 권력과 자본으로 통제할 뿐이다. 대학을 다만 단편적 자본 재생산의 기지로 간주하는 가운데 학문과 지성이 죽어가는 현상은 당연하지 않은가. 정치와 자본 권력은 성찰적 지성을 원하지 않는다. 중등교육은 서열화된 계급 사회로 편입하기 위한 관문이 된지 오래다. 이런 현실을 두고 다만 입시 시험 형식만 문제삼았던 것이 이 나라 운영을 떠맡은 이들이 반복해온 행태다.
이제 고등교육체제 근본 변화 필요
미래 사회·지성적 성찰 함양 목표
현대의 대학 체제는 근대화를 수용하려 했던 독일 자유대학 모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혁명 이래 변화된 현실을 계몽주의적 교육을 통해 수용하려 했다. 여기에 전문과학 지식 연구와 철학적 성찰성 교육이 대학의 중요한 두 축이었다. 그 이후 미국식 대학 체제에 따른 변화와 확장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근대적 대학 체제의 한계가 명백해진 지금 고등교육과 학문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당면한 과제가 되었다. 그에 근거해 중등교육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입시제도의 문제는 교육과 사회적 현실의 극명한 현상일 뿐이다. 이에 대한 반성과 전망 없이 단편적으로 교육을 말하는 것은 너무도 맹목적이다.
이 시대 절박한 교육과 연구의 과제는 미래 사회에의 전망과 공동선을 지향하고, 규범성과 지성적 성찰성을 함양하는 데 있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