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7일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매일 오전 10시29분 시청 분향소 앞에서 국회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8.8㎞. 참사로 희생된 159명을 상징하는 159㎞가 될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참사로 사랑하는 딸과 아들, 형제, 자매를 잃은 유가족들이, 그리고 그들의 곁이 외롭지 않도록 시민들이 함께한다. 159명이 사라진 거대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한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사람들을 만나고 걷는 것이 조금 낫다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행진에 참가한 한 유가족이 말했다. "딸이 사준 운동화예요. 구멍이 나서 버릴까 하다 신발장에 넣어놨는데. 안 버리길 잘한 것 같아요." 날마다 행진에 참여하는 아버지는 딸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걸음을 재촉했다.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것은 또 다른 순례길처럼 느껴졌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을 묻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기도. 순례의 행렬이 시청에서 국회로 향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상징
유가족 매일 8.8㎞씩 걸어
뒤돌아보면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제대로 책임을 지라' 요구하는 것은 늘 참사 피해자의 몫이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싸움이 그러했고, 일터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난 참사에 제대로 책임을 지는 국가의 모습은 없었다. 진상규명은 부족했고 누구도 합당한 책임을 지지 못한 채 사건이 수습되어왔다. 참사 이후 안전을 위한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진실과 책임규명, 안전대책이 부재한 시간은 또 다른 재난 참사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재난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도 미흡했다. 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지만, 피해자를 늘 수동적, 시혜적 존재로 규정하는 일방적인 지원이 주를 이뤘다. 긴 시간 재난 참사 피해자들 스스로 권리를 요구하고 인권의 주체로 드러내는 싸움을 해올 수밖에 없었다. 재난 참사에서 보여온 국가의 공백을 재난 참사의 피해자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재난 참사의 피해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켜왔다. '안전한 사회', 우리가 늘 쓰는 이 말은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특별법으로, 거리에서의 투쟁으로 써내려 온 말이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써내려 가는 특별법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10월29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대규모 참사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책임을 묻는 것이다. 피해자 권리 보장은 재난 참사 피해자의 인권을 강조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고민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여당은 재난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 비난하지만 이것은 정쟁이 아닌, 국가 책임을 확인하고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세우기 위한 모두를 위한 일이다.
딸 잃은 유족들 7일째 단식농성
'특별법 신속 처리' 외침
이제는 국회가 응답할 차례
이태원 참사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두 유가족이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 7일째다. 6월 국회 안에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달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늦어도 참사 1년이 되기 전에 특별법을 제정해 조금은 달라진 사회를 떠나간 이들 앞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여름 폭염 속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시청 앞에서 국회로 행진을 한다. 국회 앞에 모여 단식을 하는 또 다른 유가족 곁에서 하루를 보낸다.
언제까지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가. 피해자들의 외침에 국회가 응답해야 할 차례이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