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킬러 문항)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카르텔(한편)이란 말인가.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 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 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뜨겁다. 특히 발언 시점이 가장 크게 정치적 공격을 받는 부분이다. 수능을 5개월 여 앞두고 수험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입시 관계자들에게 '혼란', '혼선'을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대학 입시의 안정성을 감안한다면 일리가 있다.
수능 5개월전, 혼란 가중돼 공방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 23조 '심각'
한 집 '한달 수백만원 지출'에 비판
그렇지만 대통령의 발언 내용 특히 사교육을 생각하면 판단 방향이 달라진다. 통계청이 교육부와 공동으로 실시한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끔찍할 정도다.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3조4천억원이고 사교육 참여율은 75.5%, 주당 참여시간은 6.7시간으로 전년대비 각각 21.0%, 8.4%p, 1.5시간 증가했다고 한다.
2021년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데 사교육은 더 심화되었다. 전년대비 전체 학생 수는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참여율과 주당 참여시간은 증가했다고 하니 말이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 중에서 고등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64만9천원이라고 하는데 적게 잡은 수치로 보인다. 한 집에 자녀가 2~3명 되고 학원 다니는 과목이 2~3개 더 늘어나면 한 달에 줄잡아 수 백만원이 사교육비로만 지출된다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사교육으로 골병이 들어도 회복 불가능한 경제적 치명상을 입는다는 의미다.
현우진, 이다지 등 기라성 같은 사교육계 슈퍼스타 일타강사 쪽으로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고 있고 사교육에 대한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도 사교육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왔지만 어느 정권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처럼 되어 버렸고 그 뿌리는 이제 어떤 척결 노력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착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28~31일 실시한 조사(전국 1천명 웹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3.1%P 응답률 14.2%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보았다. '현재보다 중요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32%,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응답이 51%로 나타났다. 지금과 비슷하거나 중요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응답자 10명 중 8명이나 된다. 자녀의 명문대 진학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사교육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특히 자녀가 주로 대학 진학 연령대로 올라서는 40대는 그 사교육에 비중을 두는 비율이 무려 85%나 된다.
대통령이 쏘아올린 개혁의 핵심은
공교육을 무너지게 만든 폐해 근절
수능 5개월여를 앞두고 대통령의 수능 입시 관련 발언이 일파만파 논란이 되는 상황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킬러 문항이라는 기행적인 입시 문제 출제 관행과 수십 년 동안 공교육을 갉아 먹고 있는 사교육을 근절하기 위한 중대 결단 시점에 서 있음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사교육의 문제는 경제적 비용의 과다나 공교육을 무너지게 만드는 폐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 중대한 이유 중에 하나로 높은 사교육비가 존재하고 있다. 사교육으로 인해 대치동, 청담동 과외를 동력으로 하는 서울과 수도권의 많은 우수 학교들 중심으로 계층 사다리는 재구조화되었다. 지방의 교육마저 낙후되는 처참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쏘아올린 교육 개혁의 불씨가 '킬러 문항'을 제거할지 여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사교육을 어떻게든 축소시키겠다는 의지가 더 핵심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