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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 관련 제품 가격에서 원유가와 수송·운영비 등 부가 비용을 뺀 금액을 말한다.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지표로, 액수가 클수록 좋다. 업계에선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2020년 코로나 창궐로 한때 마이너스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정유업계가 줄도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이 구세주가 됐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석유제품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코로나 종식으로 수요가 늘 것이란 예상에 정제마진이 5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8.67달러로, 전년 동기(2.8달러)보다 6배 이상 급등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영국과 미국의 다국적 정유사들이 역대 최고치 실적을 달성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국내 정유업계도 유례없는 흑자 규모로, 2020년 5조 원대 손실이 급반전됐다. 정유업계가 호황을 누리는 사이 소비자들 사이에 비판여론이 비등했다. 전쟁과 팬데믹이란 불안정 심리를 노려 기업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정유업체들에 '황제 세'를 거둬 부당한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란 낯선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탐욕을 뜻하는 영어 단어(gree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신조어라고 한다. 기업이 물가 상승을 명분으로 폭리를 취하기 위해 제품 및 서비스 가격을 과하게 인상하는 것을 뜻한다.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을 소비자에 떠넘기려 가격을 올린다는 비판적 시각이 담겼다. 국제정세에 민감한 정유 등 에너지, 식량 산업을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국내에선 라면 업계에 불똥이 튄 양상이다. 정부는 1년 새 13%나 오른 라면값이 과했다고 본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국제 밀 가격이 많이 내렸으니 라면값도 인하하면 좋겠다"고 압박했다. 값을 너무 올렸다는 비판에,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해 시장을 비튼다는 반론이 맞선다.

유럽은 밥상물가와 전쟁 중이다. 유통업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이란 인식이 깔렸다. 국내 식탁도 예외가 아니다. 분식집 라면이 5천 원이다. 서민 가계가 온전할 리 없다. 시장경제가 서민생계에 앞설 수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