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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나지 못하는 절망스런 상황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해 더 괴로워지는 참담한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이성을 두고 이별을 고하지도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저 혼자 속 앓이를 하다 청춘을 보내기도 한다. 눈물이 되고 마는 '희망고문'의 비애(悲哀)다. '수원 군 공항'이 이 모양새다.

수원 공군비행장 이전은 2013년 '군 공항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발화점이다. 국방부는 2017년 화성호 일대를 이전예비후보지로 지정했다. 주민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후보지로 선정하기 위한 전 단계다. 해당 지역이 반발하자 수원시는 민간공항 기능을 보태 민·군통합공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수원에선 '이보다 좋은 카드가 없다'고 했으나 화성 주민들 반응은 싸늘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지니 갈수록 태산이다. '군 공항 이전을 위해 꼼수를 쓴다'는 의심만 키웠다. 7년 전, 레이스 초반에 고꾸라져 아직껏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별 진전이 없자 화성에선 '공항은 물 건너갔다'고 반색한다. 이원욱 국회의원은 지난해 "이젠 걱정 안 해도 된다"며 "그래도 경계의 끈은 놓지 말자"고 했다. 수원서도 '군 공항이 이전하기는 틀렸다'는 회의론이 커진다. 


경기국제공항 '군공항 이전 배제' 조례안
軍 빠지며 신공항의 당위·목적성 불분명


이 와중에 치명적인 악재가 터졌다.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는 주초 '경기국제공항 건설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수정 의결했다.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군 공항은 제외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수원 군 공항 이전을 전제로 한다'는 내용을 배제한 게 핵심이다. 국제공항 유치를 위한 노력과 별개로 군 공항 이전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화성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수정안을 발의했다.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목적에 부합하도록 했다는 취지라고 한다. 군 공항 이전을 위해 민군통합공항으로 제안된 경기국제공항의 주객이 전도(顚倒)된 거다.

수원시가 난감하게 됐다. 경기도가 수정안에 동의하면서 본회의 통과가 유력해졌다. 괴이하고 의심쩍다. 김동연 지사는 후보 시절 군 공항 이전이 최우선 과제라고 공약했다. 경기국제공항이 군 비행장을 배제한다면 수원은 새 부지를 찾아야 한다. 민·군 공용도 어려운 판에 군 전용이라면 답이 없지 않은가. 김 지사도 꾀주머니를 준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정 조례는 명칭을 '경기도 국제공항'으로 바꿨다. 목적도 '경기국제공항 건설을 촉진하고 지원한다'를 '경기도에 국제공항을 유치하고 건설을 촉진한다'로 변경했다. 수년 전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군이 빠지면서 신공항의 당위성, 목적성, 합리성이 불분명해졌다. 국토부 기본계획에도 반영되지 않은 유령 공항이다. 인천공항, 김포공항, 청주공항과 인접한 경기 남부에 국제공항을 추가할 필요(必要)가 명확하지 않다. 수정안은 경기국제공항을 추진할 의지도, 확신도 없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상처만 남은 수원, 화성과 불편한 이웃돼
정부 방관… 표 목멘 지역정치, 대의 외면


군 공항 이전은 마땅히 중앙정부가 해야 할 국가사무다. 분쟁 당사자인 지방정부가 감당할 수 없다. 지역 반발에 막힌 공공사업이 정상 추진된 사례가 없다. 수원 군 공항은 예비후보지 주민들이 극렬 반발하는 난제 중 난제다. 그런데도 정부는 버거운 짐을 지방에 떠넘기고 남의 일 보듯 방관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은 국회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수원 군공항 이전을) 하나도 생각 안 하더라"고 전했다. 이런 폭탄 발언에도 국방부는 반론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4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공포했다.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주고 재정지원도 한다. 대구·경북은 수원보다 출발이 늦었으나 지역 정치권이 투합하고, 지자체와 주민이 호응하면서 속도를 냈다. 대구시는 군위를 편입해 차가운 민심을 돌려세웠다. 소멸 위기에 놓인 2만 명 지자체가 기사회생해 미래를 꿈꾸게 됐다. 내년 보상을 마치고 2030년 개항할 것이란 청사진이다.

수원은 상처만 남았다. 화성과는 불편한 이웃이 됐다. 지역 정치는 표심에 매달려 대의를 외면했다. 경기도와 도의회가 합작한 수정조례는 수원시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김동연의 한계'도 더 명징해졌다. 군이 빠진 민항 가당치 않다. 수원 군 공항 이전, 더 멀어졌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