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사는 문자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진정한 역사 시대가 열렸고, 문자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고 또 그것들을 비약적으로 발전, 확장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는 3천 종 정도의 언어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서 문자를 가진 언어는 10% 남짓이다.
문자는 문명의 핵심이며 꽃이다. 문명의 발상지마다 한결같이 문자가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의 갑골문자, 인도의 그림문자 등이다. 문자는 인간의 소통 능력은 물론 지식과 정보의 교류와 확장과 발전을 주도하거나 촉진했다. 또 문자는 문화와 예술의 바탕이기도 했다. 문학은 문자에 기반한 예술의 대표주자이며, 타이포그래피는 문자 자체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AI도 컴퓨터 코드, 코딩이란 새로운 문자이자 기계언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널리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나 픽토그램 그리고 악보 같은 기호체계도 문자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한자·아랍어 등과 함께 가장 영향력이 큰 영어의 알파벳은 페니키아문자의 후손이며, 페니키아문자는 북부 셈문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서부 셈문자에 파생된 것이다. 히브리와 아랍문자는 아람문자에서 갈려 나온 것인데, 아람문자도 셈문자에서 나왔다 한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심에 있는 한자는 창힐이 만들었다 하며, '여씨춘추'·'한비자'·'회남자' 등에 등장한다. 중국 산둥성에서는 창힐이 한자를 발명했다는 비석도 있으나 이는 전설로 봐야 할 것 같고, 한자는 갑골문자와 상형문자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본래 문자는 소수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군주나 그 주변의 사제·귀족·서기 등 소규모 지배집단이 장악했던 권력의 도구였다. 문자가 개방되고 나서야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는 물론 인권의 발전도 가능해졌다.
그런 문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29일 인천 송도에서 문을 연다.
개관을 축하하며 '국립'과 '세계'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으로 인류문화의 새로운 중심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