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통신위원회는 KBS수신료와 전기료의 분리 징수를 추진하고 있다. KBS의 정체성, 공영방송의 정책과제를 수신료징수 방식으로 단순화하면 본질이 호도된다. KBS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방송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했다. 효율적인 식민지 통치 수단으로 라디오를 도입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후 경성방송국은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다. 명칭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바뀌었다. 1961년에는 TV방송도 시작했다. 1973년에 공사화(公社化)되어 공영방송이 되었지만 정치권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땡전 뉴스'라는 오명이 생겼다. 대통령 동정을 가장 먼저 보도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5년 2·12총선에서는 편파방송으로 일관하여 시청자의 반감을 유발하여 '시청료 거부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KBS의 흑역사다.
1990년대에는 민영방송 허가, 케이블TV 도입으로 방송사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위기를 느낀 KBS는 시청료의 명칭을 '수신료'로 변경하고 1994년부터 전기료에 합산하여 징수하기 시작했다. 시청료가 시청의 대가라면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영방송의 국민 부담금이라는 논리를 도입한 것이다.
공영방송 명목 전기료에 포함됐던
'KBS수신료' 방통위 분리징수 추진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방송환경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1994년에 시청 가능한 방송채널은 5개였다. 지금은 수백개의 채널을 볼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콘텐츠 이용도 보편화되었다. KBS의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고 있다. KBS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도 우리사회에서 KBS는 필요한가. 이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뉴스를 예로 들어보자. 30년 전에는 KBS, MBC, SBS에서만 TV뉴스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채널도 뉴스를 제공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KBS 사장의 임기 문제로 진통을 겪는다. 좌파가 주도하는 노조는 보수정권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 KBS 뉴스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다른 방송사와 무엇이 다른가. KBS뉴스를 외면하는 시청자에게도 수신료를 청구하는 셈이다.
보편화된 미디어에 정체성 흐려져
재난방송 의무 부여 등 활용 과제
現정부 독단 금물 '사회적 합의'를
만약 우리 사회에서 KBS의 실효성이 다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자원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EBS와 통합하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 제고도 기대할 수 있다. 혹자는 재난방송 담당자로서 KBS의 역할을 강조한다. 변화한 방송환경에서 재난방송 의무를 KBS에게만 부여하는 것도 재고(再考)해야 한다.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채널에게 재난방송을 의무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재난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현실을 감안하면 포털사업자를 활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를 현 정부가 독단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KBS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논란은 계속되고 사회의 분열은 오히려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지난한 과제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송정책에 대한 합의도출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해관련자의 반발도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논의를 지연시키기에는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 문제는 공감하지만 논의를 거부한다면 그 집단은 모두 카르텔에 의한 기득권 세력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