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를 할 때라 머리도 식힐 겸 학원 아이들에게 휴강한 교수가 가르치는 과목이 이렇다고, 실제로 수능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농을 곁들여 몇 개 전공 개념을 알려줬다.
교수는 11월 수능 직후 학교로 돌아왔고 그 해 수능엔 '개구도(開口度)를 중심으로 한 음절의 특징', 그러니까 농처럼 했던 그 개념이 정말로 출제됐다. 언어에서 턱걸이 등급을 얻어 4년제 대학 수시 기준을 충족시킨 실업계 고교학생이 "쌤 덕분에 대학 갔어요"라고 농을 던졌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최근에 세무조사를 당한 대형 입시학원에서 일을 했다. 언어와 사회탐구영역 온라인 강의를 미리 듣고 제목을 잡고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 검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족집게 강사', 지금은 '1타 강사'로 불리는 이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수능 문제를 기가 막히게 '예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결은 이렇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30명씩 조교를 거느리는데 대체로 이들은 서울 소재 대학의 학부생이거나 대학원생이다. 조교를 동원해 주요 대학에서 2학기 휴강에 들어간 교수를 찾는다. 몇 년 치 기출문제에 휴강 교수의 전공·개설과목·강의내용까지 훑으면 그 해 수능 '경향'이 예측 가능하다. 때론 지문 내용까지 정확히 맞힌다.
이런 프로세스는 언어과목에 특효약이 됐다. S대를 가냐 Y·K대를 가냐를 다투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1~2문제에 당락이 결정되는데, 이런 이들은 입학 즈음 고교 과정 수학은 통달한 상태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남은 건 국어. 영수하느라 부족한 독서량은 족집게 강의로 해결된다.
수능 출제 위원이 교수인 건 구조적 문제다. 일반 교사는 비문학 지문으로 출제될 제재의 깊은 내용까지 알 수 없기에 오답 논란을 피하려면 출제나 검토에 반드시 전공자가 필요하다. 출제할 전공자는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반드시 사라진다. 1타 비결은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에 한차례 열리는 표준화 시험이 시작된 1994년 이래 유구하게 이어진 '대치동'의 전통이었다.
갑자기 수능 얘기를 꺼낸 건 '킬러문항' 때문이 아니라 '대치동 아빠들' 때문이다. 서울과 인천 모두 여당 단체장이 차지한 탓에 일자리를 잃은 야당 정무직이 대거 경기도로 왔다. 주거지는 서울, 직장은 경기도, 이념은 진보인 '어공'이다.
도청 근처에서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데 알고 보니 모두들 대치동 아빠였다. 주말에 자녀를 대치동 학원에 보내고 2천원 정도 하는 커피를 마시며 수업 끝날 때까지 유튜브를 보며 기다리는 아빠들이었다. 자가가 아닌 전세로 대치동에 살며, 대치동에서 흘러나올 족집게 정보를 기다리는 아빠들 말이다.
수원에서 분당을 거쳐 강남으로 이어지는 분당선, 광교에서 판교를 거쳐 강남까지 이어지는 신분당선은 '교육열차'이기도 하다. 평일 저녁·주말 낮에 열차를 타면 직장인 사이에 가방 멘 아이들이 눈에 띈다. 고속철이 지방 부흥이 아닌 수도권 빨대 효과를 불러왔듯 신분당·분당선은 대치동의 빨대가 됐다. 지금도 전세 사는 대치동 아빠들, 대치동 아빠가 되지 못한 분당·판교·수지·영통 아빠들은 대치동을 바라본다. 입시엔 카르텔이 있다. 그 카르텔은 어딘가 애잔하고 서글픈 모습을 하고 있다.
/신지영 정치부 차장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