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러 영화계의 젊은 거장, 아리 에스터가 이번에도 찝찝한 가족극을 들고 관객을 찾아왔다. 앞서 장편 데뷔작 '유전(2018)'에서 핏줄로 묶여 벗어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수난사를 보여줬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핏줄로 얽힌 가족에 되레 집착하고 고통받는 모자 관계를 그렸다.
독특한 점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은 듯 보이는 유머를 은근하게 더했다는 것. 그렇다 보니 170분 동안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보다가도 9분 정도는 웃게 되는 괴상한 작품이 탄생했다. 여름 바캉스 시즌 귀신이 출몰하는 호러 영화보다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선택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이유다.

영화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만' 하는 '보(호아킨 피닉스)'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긴 여정을 펼쳐낸다. 다만, 보가 경험하는 모험은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극의 흐름은 편집증 증상을 보이는 보의 사고과정과 똑같이 흐른다. 누군가 그를 골탕먹이려 집 열쇠를 감추거나, 길거리에선 칼을 든 나체의 남성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온다. 온갖 역경에 둘러싸인 상황이지만, 그는 목적지를 두고 한 걸음도 후퇴하지 못한다.
편집증 증상 겪는 '보' 환상-현실 오가는 여정
역경에도 어머니에 순응… 진실 드러나며 붕괴
'젊은 거장' 아리 에스터 신작… 곳곳 전작 오마주
여기서 '가야만'에 방점이 찍히는 까닭은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상할 정도로 과한 소유욕을 보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런 어머니에게 순응한다. 그가 평생을 어머니에게 저항하지 않던 이유는 허무하게도 가족, 선택할 수 없이 타고난 요인에서 비롯한 믿음 탓이었다. '가족이니깐'으로 뭉뚱그린 믿음은 진실이 드러나면서 무너진다.
결국 이 영화에서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보의 눈앞에 펼쳐졌던 신기루 같은 일들이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건, 무력한 그의 상상이 빚어낸 소극적인 저항에 가깝다.

이 밖에도 영화에는 아리 에스터의 전작들을 오마주한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기도 하고, 성 역할을 전복한 듯 보이는 기괴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세뇌로 복상사의 공포에 휩싸인 순결한 남성상은 아리 에스터식 유머의 절정이다.
왠지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몸서리치는 관객을 사랑할 것 같은 아리 에스터.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그는 독특한 상상력을 더욱 신명 나게 스크린에 펼쳐낸다. 어쩌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상투적인 꿈보다 해몽 대신, 직설적인 감상을 이야기하는 게 이 영화에 적확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엠마 스톤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 남긴 한 줄 평은 오히려 묵직하다. "지금 제정신이세요?"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