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은행의 전신은 1969년 창립한 인천은행으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본점을 뒀다. 1972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경기은행으로 행명(行名)을 바꿨다. 경기은행이 인천에 본사를 둔 게 의외이나, 당시엔 인천시가 광역지자체인 경기도에 속한 기초지자체였기에 이상할 게 없다. 외려 금융기관 사훈이 '인화와 단결, 성실한 봉사'라는 게 생경해 보인다.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악조건에도 1988년 총수신 1조원을 달성했고, 장학회를 세웠다. 이듬해 '경인리스금융'을 설립했고 1992년 구월동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신경기상호신용금고'와 '경은경제연구소'를 잇따라 출범시켜 세를 불렸으나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1998년 6월 퇴출은행으로 지정돼 한미은행에 인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급작스런 퇴출로 적금 인출이 어렵게 되자 경인지역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하철 강남역 1번 출구 빌딩에 강남역지점이 있었는데, 2007년까지도 간판이 달려 궁금해하는 시민이 많았다. 지점이 있던 자리는 SK텔레콤에 이어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직원들 상당수는 일자리를 잃었으나 일부는 한미은행에 고용승계가 됐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보호하려 지방은행을 희생시켰다는 동정론이 확산했다. 퇴출을 막으려 로비를 한 은행장이 옥살이를 하다 사망하는 흑역사를 남겼다. 한때 경기·인천을 대표할 금융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며 경기은행을 부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무위에 그쳤다. 진입 장벽이 워낙 높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최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신규 사업자 문턱을 낮춰 은행권 경쟁을 유도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적극 허용하고, 인터넷 전문은행과 지방은행의 신규 인가도 추진한다. 기본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승격할 전망이다.
경기·인천을 대표할 지방은행 설립이 가능해졌다. 국내 산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경제권이다. 인구 65만여명 지자체에 제주은행이 운영되는 마당에 1천700만명 생활권역에 은행이 없는 게 말이 되는가. 수도권 금융 환경이라면 4~5개 지방은행이 운영돼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경기은행', '인천은행' 멀지 않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