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언진의 자는 우상(虞裳)이며, 호는 송목관(松穆館)이다. 그는 성호의 조카이자 제자인 이용휴의 제자다. 이용휴는 18세기 조선 문단의 큰 별이었다. 정약용은 말하기를 "이용휴는 명성이 한 시대의 으뜸이어서 무릇 글을 새롭게 바꾸고자 수련하는 자들이 모두 와서 수정을 받았다. 몸은 포의의 반열에 있으면서 손으로는 문원의 권력을 30여 년 동안 쥐었으니 예전에 없던 일이다"라고 이용휴의 위상을 평했다.
성호 이익 조카인 이용휴의 제자
정해진 틀 탈피 새로운 문학 시도
그의 글쓰기 단약 굽듯 했다는 것
이용휴는 성호의 경세학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 학자들이 외면하던 양명학을 비롯하여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아들 이가환은 조선 제일의 천재로 꼽혀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문사이자 정치가였다.
이언진이 이런 이용휴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의 빼어난 재주 덕분이었다. 이용휴는 이언진의 시에 대한 첫인상을 '시집을 펼치자 빛이 괴상하고 번쩍번쩍하여 무어라 형용하기가 어려웠다'고 쓰고 있다. '시는 투식을 없애고, 그림은 격식을 따르지 말자. 정해진 틀은 뒤집고, 남이 가던 길을 벗어나자. 앞의 성인이 가던 길을 가지 말아야 비로소 훗날에는 참다운 성인이 되리라'라는 게 이언진의 시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언진은 정해진 틀, 남이 가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문학을 시도했다. 이언진을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은 스승 이용휴였다. 스승은 제자의 시집 '송목관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문을 짓는 작가는 남의 견해를 받아 제 견해를 세운 사람과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있다.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고함과 편견이 개입되지 않아야만 참된 견해가 만들어진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참된 재능을 가지고 그 견해를 보충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야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그런 작가를 많은 햇수를 두고 구하다가 송목관 주인 이우상군을 만났다. 이군은 시문의 창작에서 무리를 초월한 탁견과 현묘한 경지의 상상력을 발휘한 사람이다. 또 글자 하나를 황금인양 아껴서 쓰고, 시구 하나라도 단약(丹藥) 굽듯 단련하였다. 그러므로 붓이 한 번 종이 위에 떨어지면 세상에 전할 시문이 태어났다'. 단약이란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명약을 이른다. 이언진의 글쓰기가 단약을 굽듯 했다는 것이다.
이용휴는 '아! 품계를 밟아 올라가서 1품의 높은 벼슬아치가 된다 해도 아침에 작위를 거둬들이면 저녁에는 평민이 되고, 재물을 불려 만금을 소유한 부자가 된다 해도 저녁에 잃어버리면 다음날 아침에는 가난뱅이가 된다. 그러나 문인재사가 소유한 것은 한 번 소유하게 되면 제아무리 조물주라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물이다. 이군은 바로 이러한 보물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니 나머지 구구한 것들은 모조리 사양하여 보내고 가슴에 남겨두지 않아도 좋겠다'라고 갈파한다.
이언진은 20세가 되던 1759년에 역과에 합격하고 역관이 되었다. 통역으로 북경에 두 차례 다녀왔고 일본에도 다녀왔다.
죽기전 모든 詩 아궁이에 태우자
아내가 급히 꺼내 170여수만 남아
이언진은 죽기 전 자신이 지은 시를 모두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질렀다. 이를 본 그의 아내가 황급히 꺼내서 전해진 시가 170여 수에 이른다. 다음은 그때 불 속에서 살아난 '집'이라는 시다.
'사방을 가로막아 빈 곳을 만들어 집이라 부르지/달팽이 뿔 위에도 지을 수 있다는 집/잘해봐야 나와 세상을 가로막는 것인데/무얼 염려해 서로 가지려 싸우는가/아무래도 이 세상이 큰 감옥이라면/감옥 속에 다시 감옥을 지어 숨으려 드는 건데/나는야 가지거나 감출 게 전혀 없어/발가벗은 노인네로 골목길에 머물리라'.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