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는 '이어가게'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역 고유의 정서와 특색을 담은 오래된 가게를 발굴·지원해 골목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취지가 크다. 30년 이상 뚝심 있게 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이 대부분이다. 경인일보는 이어가게로 선정된 노포를 찾아 그곳의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기획물을 9차례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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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만수동에서 2대째 '황해순모밀냉면'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김계천 대표. /김희연기자khy@kyeongin.com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한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정겨운 간판이 달린 식당이 하나 눈에 띈다. 32년간 이 골목을 지켜온 '황해순모밀냉면'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박정매 1대 대표는 한국전쟁 당시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소청도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박 대표는 황해도 해주에서 냉면 장사를 했던 할머니로부터 전통 비법을 배워 1991년 이곳에 냉면집을 차렸다.

어머니인 박 대표의 뒤를 이어 2대째 황해순모밀냉면집을 운영 중인 김계천(58) 대표는 이 비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우 뼈와 양지를 푹 고아 냉면 육수의 구수한 맛과 향을 내고, 삶은 고기는 잘게 찢어 고명으로 쓴다. 면은 메밀을 일일이 씻어 말린 뒤 직접 빻고 반죽해 뽑아낸 것만 사용한다.

황해도식 물냉면은 심심한 맛이 나서 처음 먹어보는 손님 10명 중 4~5명은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한다. 생각보다 싱거운 맛 때문에 물냉면 대신 비빔냉면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계속 먹다 보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육수와 특유의 면발에 매료돼 이곳 물냉면만 찾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손님의 90%는 어릴 때부터 이곳을 방문한 단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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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황해순모밀냉면'은 30년 넘게 메밀면 뽑는 고유의 방식을 지켜오고 있다. 사진은 메밀을 빻는 기계. /김희연기자khy@kyeongin.com

김 대표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 오던 부부가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근황을 물어보니 대전으로 이사를 갔다더라"며 "아이들이 다른 냉면을 먹질 않아 2시간 반을 걸려 우리 냉면을 먹으러 왔다는데, 정말 고맙고 뿌듯했다"고 웃음 지었다.

식당에 머무르다 보면 건물 옥상에서 박 대표가 통모밀을 기계로 빻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옥상에 마련된 공간까지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몇 번 올라야 하는데, 항상 고소한 메밀 냄새가 가득하다. 황해순모밀냉면집은 껍질을 깐 메밀과 안 깐 메밀을 섞어 빻고, 이 가루로 면을 손수 뽑아내는 방식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고유의 면 색과 식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가게 한편에 걸린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문구처럼, 김 대표는 20여년 전부터 지역 나눔에 앞장서왔다. 복지관, 장애인·노인시설 등 필요한 곳이라면 면 뽑는 기계를 직접 끌고 가서 냉면을 대접했다. 이렇게 나눈 냉면은 1년에 2천 그릇에 달한다. 지금은 사정상 직접 방문하지는 못하고, 매달 '나눔데이'를 운영해 오후 3시 이후 매출 전액을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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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황해순모밀냉면' 가게 내부 모습. 벽에 가훈이자 사훈인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문구가 걸려 있다. /김희연기자khy@kyeongin.com

김 대표의 바람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손님들에게 냉면을 대접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고3인 김 대표의 둘째 딸이 가업을 잇겠다며 조리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어 기특한 마음이다. 현재 김 대표의 동생도 중구 연안부두에 자리한 분점을 운영 중이다.

김 대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단골손님이 많은데, 항상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맛으로 가게를 이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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