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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이따금 양평 두물머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를 찾는다. 올해만도 벌써 세 차례 이상 다녀왔다. 다산은 한국 실학사상에서 우뚝 솟은 마루다. 생가와 무덤, 실학박물관, 생태공원으로 구성된 이곳에서 많은 이들은 다산을 기리며 평안을 얻는다. 그가 태어나고 묻힌 생가 앞에 이르면 남한강과 북한강은 큰물을 이룬다.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수는 이곳에서 위대한 학자가 태어난 이유를 짐작케 한다. 행정 지명 또한 새도 편안히 쉰다는 조안면(鳥安)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영면을 취하며 후손들과 만나고 있다.

한데 두물머리 일대가 소란스럽다. 하늘을 나는 새도 쉬어갈 만큼 평온한 이곳이 뜬금없는 정치 논쟁에 휘말렸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계획 백지화를 놓고 여당과 야당은 편을 갈라 연일 상대를 공격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발단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백지화 선언이다. 원 장관은 야당의 근거 없는 정치 공세 때문에 사업 계획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정부에서 추진하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한판 붙자고 포문을 열었다. 이 때문에 고속도로 개통을 학수고대하는 양평군 주민들은 황당함을 넘어 격앙된 상태다.

민주당은 노선 종점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된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급작스레 종점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강상면 종점 부근에는 김 여사 일가 소유 땅이 27필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종점 변경은 양평군 요청에 의한 것이며, 민주당에서도 검토한 내용이다, 또한 강상면 노선은 환경을 덜 훼손하며 교통편익도 높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인터체인지(IC)가 아닌 분기점(JCT)이기에 민주당에서 주장하듯 땅값 변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
정부·국힘·민주당, 아전인수 해명
정치적 이유로 중단 국민들 '황당'


정부여당과 민주당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지 국민들은 알도리가 없다. 정보접근이 어려운데다 그들이 내놓는 해명 또한 아전인수 해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들 입장에서 불리한 내용은 감추고 유리한 내용만 추려 이야기할 게 빤하다.

관건은 1조8천억원에 달하는 대형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주무부처 장관 재량으로 가능하다고 여기는 원 장관의 태도다. 적어도 국책사업을 추진하려면 수많은 행정절차와 여론수렴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이 사업은 2017년 착수, 지난 6년 동안 예비타당성 조사와 노선 설계, 주민 공청회를 거쳤다. 앞으로도 예산편성과 국회 예산심의 단계가 남아 있다.

한데 불쑥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확정한 사업일지라도 필요성이 떨어지거나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등 여건이 변화하면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원 장관 발표에서 확인됐듯 중단 사유는 정치적 이유다. 야당의 정치 공세가 싫어 중단한다는 것인데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다면 사실관계를 들어 반박하면 된다. 그런데 팩트와 정치를 뒤섞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건 너무 나갔다. 원 장관은 백지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 민주당 간판을 걸고 붙읍시다"라며 정치문제로 전환했는데 사려 깊지 못했다. 이 사업은 고질적인 교통 정체를 해소할 목적이지 야당 대표와 정쟁을 벌이는 정치적 거래가 아니다.

여야, 서로 사과 요구하며 '맞불'
숙원사업, 정쟁 거래해선 안된다

백지화 발표 이후 정부여당 행태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특혜 의혹을 주장하는 민주당도 2년 전 국토부 안과 같은 노선을 요구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재추진하겠다"고 시사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상식적인 의문 제기에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느닷없는 백지화 폭탄을 투하하고 그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며 사과를 촉구하며 맞불을 놓았다. 야당이 사과하면 재추진하겠다는 건 궁색하며 실소가 나온다. 거듭 말하지만 국책사업과 숙원사업은 정쟁 거래 대상이 아니다. 국가가 지역주민을 볼모로 삼는다면 치졸하다.

다산은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원수가 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또 수백 년 뒤 사람들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것인지 생각하며 써야한다"고 했다. 지금 원 장관을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들의 말과 행동은 어떠한가.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