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이야기는 둘로 나뉜다. 행복한 결말과 슬픈 결말. 행복한 결말은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소년이 소녀를 잃는다, 소년이 소녀를 얻는다는 순서다. 슬픈 결말은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소년이 소녀를 얻는다, 소년이 소녀를 잃는다는 순서를 갖는다. 잃은 다음에 얻을 것인지 아니면 얻은 다음에 잃을 것인지 그것이 문제다. 잃은 다음에 고난을 극복하고 마지막에 얻으면 행복한 결말, 얻은 다음에 어떤 이유로 마지막에 잃으면 슬픈 결말이 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재은과 윤경의 이야기는 슬픈 결말의 사랑 이야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재은과 윤경의 사랑 이야기를 조금 특별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물을 바꾸었다. 소년과 소녀에서 소녀와 소녀로 변화를 준 것이다. 이야기 설계에서 인물의 변화는 흔한 일이다. 소년과 소년으로 바꾼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가. 더 다양한 변주를 원한다면 소년과 소녀의 자리에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넣어 보기만 하면 된다. 나이에 변화를 주면 노년의 이야기가 된다. 출신 지역을 바꾸거나 출신 계급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여도 좋다. 때로는 과거나 미래로 그 시간을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동성간 결혼 2062년 이후 법제화
문학평론가 김현은 '행복한 책읽기'에서 사랑을 이렇게 말했다.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돌이나 풀과 같은 상태, 타자가 언제나 타자인 상태는 이야기에서 대체로 쓸모가 없다. 이야기의 매력은 친숙한 존재가 낯설게 느껴지거나 낯선 존재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를 특별하게 하는 장치는 작품 안에 있다기보다는 작품 밖의 현실에 있다. 이를테면, 혼인신고서 불수리 서류를 발급받는 2035년의 장면이 그렇다. 재은과 윤경은 현행법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부인 셈이다. 둘은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법 아래에서 혼인신고서 불수리 서류를 발급받는다. 그렇게라도 오늘을 기념한다. 일상적인 삶의 한 장면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만드는 것은 현행법이 정하고 있는 기준과 그 경계선의 분할이다.
미래장소로 옮겨 금기의 문 넘어
2007년 처음 들려준 UFO이야기
2099년에도 기억하고 있는게 사랑
연극은 금기의 시간을 이동한다. 가까운 미래로 장소를 옮김으로써, 오로지 그 하나의 변주만으로 법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렇게 금기의 문을 넘어선다. 동성 간 결혼이 법제화되는 시점은 2062년 이후이다. 어느 사회나 금기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관념을 생산한다. 그 기준에 따라 지배적인 서사를 만든다. 그 경계선 안쪽에 있는 우리는 정상이며, 그 경계선 바깥쪽에 있는 그들은 비정상이라는 담론을 지배 서사는 끊임없이 유포한다. 하지만 그 서사가 문서고에 잠자고 있는 종이 더미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를 배척하고 추방하는 배제의 칼날이 되어 살아 움직일 때가 있다. 가혹한 형벌이 되는 때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단일한 하나의 지배 서사만이 작동하는 사회가 아닌 다양한 삶의 서사가 풍요롭게 피어날 수 있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사랑은 갖지 않은 것을 주는 것"(라캉)이라는 말이 매력적인 만큼 진실을 담고 있다면,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사랑 이야기가 분명하다. 2007년 처음 만났을 때 들려준 유에프오(UFO) 이야기를 2099년에도 기억하고 있는 게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걸 아직도 기억해?" "당연하지."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