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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지난 5일자 경인일보는 사설 '정치와 정무에 흔들리는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게재했다. 종점 변경 의혹을 둘러싼 야당과 정부의 공방이 예사롭지 않았다. 민주당이 특혜 변경 의혹을 제기한 도로 종점에 영부인 김건희가 있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반박은 서늘했다. 늘공의 빈곤한 정무감각을 탓하며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러다 고속도로 사업이 지체되고 표류할까 조바심이 났다. 정치와 정무로 국책사업을 흔들지 말라고 경고한 배경이다.

지체와 표류를 걱정했던 양평군과 지역언론의 우려는 순진했다. 민주당은 6일 강상면 종점 현장을 찾아가 특혜 의혹을 기정사실화했다. 다음 날 원희룡 장관은 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정치가 없는 한국정치에 일말의 양식을 기대했던 지역의 호소는 철저하게 짓밟혔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양평군민들의 15년 숙원사업이자, 1조8천억원 짜리 국책사업이다. 양평군민 13만여명이 오매불망 고대하던 고속도로가, 야당의 상투적인 의혹제기와 국토부장관의 신경질에 없던 일이 됐다. 양평군민에겐 생명선인 도로를 야당은 정쟁거리로, 여당 장관은 정치적 결백 입증용으로 날려 먹었다. 원인과 결과, 시종(始終)이 내로남불로 뒤얽혀 해법부재의 지경에 이르는 한국형 정쟁의 특징을 감안해도 서울~양평고속도로 백지화는 어이없는 일이다. 막장조차 없는 정쟁이 국책사업을 말아먹기에 이르렀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1조짜리 국책사업
민주 의혹제기·원희룡 장관 백지화 선언


국책사업 역사상 최초의 정치적 백지화 사례가 하필 서울~양평고속도로이다. 아무래도 경기도라서, 양평군이라서 당하는 모욕이다 싶다. 영호남과 충청권에서 정치적 시비로 국책사업을 날린다? 상상할 수 없다. 제주도 국책사업을 이런 식으로 백지화한다? 원 장관이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할 리 없다. 강력한 정서적 연대로 무장한 지역의 국책사업은 정쟁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십수년간 검토 차원에 머물던 동남권신공항은 2021년 2월 문재인의 선언과 국회 특별법 입법으로 순식간에 30조짜리 가덕도 신공항 사업으로 확정됐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동의했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직전에 벌어진 상황이다.

여야와 정부가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정치적으로 희롱할 수 있는 건 정치적 손실이 전무하다는 판단때문이다. 여주와 복합선거구인 양평의 국회의석 지분은 2분의 1석에 불과하다. 광역단체인 경기도내 정치권의 연대는 무시해도 될 수준이다. 개나 소나 양평을 집적대도 양평군과 군민을 지켜주고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없다는 얘기다. 야당이 도로의 효율과 군민의 의사는 무시한 채 김건희로 사업을 흔들고, 일개 국토부 장관이 개인적 결단으로 사업을 백지화하는 만용을 부리는 이유다. 야당과 당·정에게 양평군민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하고 무용하다.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이 쇼로 끝날 단계를 넘고 있다. 야당에게 한 방 먹였다는 통쾌함은 잠시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꼬이고 있다. 강상면 종점엔 영부인 친정이, 강하IC 근처엔 김부겸 전 총리가, 양서면 종점엔 민주당 전 군수의 땅이 있다. 의혹을 의혹으로 덮는 정치 공방에 도로는 종점을 잃었다. 양평군민은 이용할 수 없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IC 하나 추가하는 상식적인 사업변경에 이런 사달을 초래할 줄, 양평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을 테다.

정치적 희롱 당했는데 지켜줄 세력 없어
도내 여야 의원들 힘모아 양평 대변해야

양평이 외롭다. 국회의원도 없다. 경기도가 나서야 한다. 김동연 지사는 해외출장 중 백지화 소식을 듣고 "안타깝고 한심스럽다"고 개탄했다. 개탄은 도민과 양평군민이 할 일이고, 지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양평군민이 원하는 노선을 확인하는 일이 급선무다. 양평군 인구는 전체 조사도 가능한 규모다. 양평군민이 원하는 노선으로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경기도가 앞장서면 경기도 여야 국회의원들이 힘을 모아 양평을 대변해야 한다.

지금 정치는 양평을 희롱하고, 야당과 장관은 양평군민을 국민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양평의 수모를 방관하면, 다음엔 경기도의 다른 시·군이 똑같은 일을 당한다. 이 정도 연대도 힘들면 자치단체 경기도는 무의미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