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지난달부터 오는 11월까지 전통시장 야시장행사를 작년의 19곳에서 56곳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침체되었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의도이다. 지자체들은 저마다 바가지 근절을 언론에 흘리지만 이를 믿을 국민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전국적으로 상인들이 축제장을 찾은 구경꾼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상식이 된지 오래인 때문이다.
'방송 1박2일' 영양편, 옛날과자 덤터기 공분
지역축제·전통시장의 '바가지 상술' 악명
붙박이 상인들의 폭리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14일에는 인천 소래포구 전통어시장 상인 100여 명이 시장 앞에서 호객행위, 섞어팔기, 물치기(물을 넣어 무게 늘리기), 바가지요금 등을 척결하겠다며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지난 5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래포구에서 꽃게를 바꿔치기 당했다'는 사연이 뜨면서 포털이 후끈 달아오른 때문이다. 소래포구에서 살아있는 꽃게를 구매했지만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다리가 떨어진 꽃게들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래포구 어시장은 1970년대 새우 파시 형성을 계기로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수도권의 대표 어시장으로 부상했고, 꽃게가 잡히는 5~6월과 김장철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소래어시장 주변에 현대적인 종합어시장 건물을 짓고 주차시설을 완비한 직후인 2012년에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보다 많은 845만 명의 관광객들이 소래포구를 찾았다. 그러나 바가지 상술로 악명이 높아지면서 방문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 근래부터는 481개 점포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전통시장의 6월 전망 경기지수(BSI)는 전월보다 9.8포인트 하락한 70.0을 기록했다. BSI가 100보다 높으면 경기가 호전됐다고 보는 업체가 더 많음을, 100미만이면 경기가 악화됐다고 보는 업체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BSI는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전 국민들의 지난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0.7로 4개월 연속 오름세인 것과 대조적이다. 내수경기는 점차 살아날 조짐인데 전통시장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바닷가의 생선회는 서울 시내보다 비싸며 추억이 서린 옛날과자도 그림의 떡이 된 지경이다. 리서치기업 메타베이가 지난달에 소비자 2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대형마트의 강제휴업 철폐를 요구했다. 소비자들이 '잠깐 한눈 팔면 물건 바꿔치기 하고, 카드 대신 현금만 달라'는 재래상인들에 식상한 것이다. 역대 정부들이 경쟁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를 퍼붓고 갖가지 처방을 동원했지만 전통시장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현금취급·물건 바꿔치기 등 소비자 불신만
갈수록 BSI 하락, 미꾸라지 한마리 탓일까?
한국경제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보부상의 상업문화가 주목된다.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 등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장꾼', '장돌뱅이'로 불렸는데 이들은 무리를 지어 전국의 장터를 무대로 활동하던 한국의 대표적인 행상들이었다. 일찍부터 상단(商團)을 조직해서 자신들의 상권(商圈)을 확보함은 물론 엄한 규율로 구성원들을 통솔했다. 조직에서 허가하지 않은 상품 취급이나 바가지요금, 절도와 사기 등에 대해서는 사형(私刑)으로 엄히 다스린 것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소비자와 동업자를 우선시했던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상도(商道)야말로 한국의 불가촉천민들이 천여 년 동안 번영해온 비결이다.
요즘은 기업들이 작은 실수라도 하면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모든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어 그날로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소름 돋는 시대이다. 특히 20∼30대의 MZ세대에 노출된 소비재 기업들일수록 위험성이 크다. 미꾸라지 한 마리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또 어떤 잔머리 사장님이 동업자들을 개미지옥에 초대할지?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