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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용문자인 한자는 표어문자(表語文字)다. 표어문자는 단어문자라고도 하는데, 사전적 정의는 '하나하나의 문자로 언어의 하나하나의 말이나 형태소를 나타내는 문자' 체계를 가리킨다. 표어문자는 대부분 상형문자에 기원을 두고 발전해왔다. 상형문자는 구체적인 사물만을 나타내는 기호 또는 문자인데, 표어문자는 문자로 말과 형태소를 거의 모두 나타낼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참고로 단어가 독립적인 말이라면, 형태소는 단어를 더 쪼갠 것으로 뜻(의미)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다.

편의성과 체계의 면에서 한글의 우수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한자도 글자 하나하나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참으로 깊은 뜻을 갖고 있다. 가령 성인 성(聖)자와 믿을 신(信)자만 봐도 그렇다. 성스러울 성 또는 성인 성자는 귀 이(耳) · 입 구(口) · 임금 왕(王)자가 조합된 글자다. 듣고 말하는 데 있어 최고의 경지(王)에 이른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 것이다. 그만큼 말하고 듣는 것을 신중하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믿을 신자 역시 사람인 변에, 말씀 언(言) 자를 합쳐 만든 글자다. 사람의 말에는 반드시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신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가장 뜨거운 쟁점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란이다. 상대방 입장이나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반대의견부터 내세우거나 반대로 방류하는 물을 마시고 여기서 수영해도 된다는 말 모두 신뢰를 떨어트리는 무책임한 발언들이다. 방류 문제와 관련하여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다녀갔음에도 논란은 식지 않고 더 격화하고 있으며, 어업인을 비롯하여 국민들의 불안감도 여전하다.

방류는 이른바 과학적 검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사회·윤리적 차원 문제이기도 하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입장에서 무작정 탱크에 저장하는 것보다는 처리를 통한 방류가 더 안전한 선택임을 알리는 사회적 소통의 노력과 국제사회에 널리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진정성 있게 이뤄졌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그 누구든 자기 발언에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또 신뢰할 수 있는 말(信)을 하며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耳) 대화(口)하는 상호 소통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