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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 가족이 캠핑으로 저택을 비우자 기택이네 가족은 주인집에서 파티를 연다. 기습적인 폭우로 박 사장네가 캠핑을 취소하고 귀가하면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도망쳐 나온 기택과 아들, 딸은 빗물과 함께 한 없는 아래로 흐른다. 상하 계층의 심리적 거리를 물리적 내리막 길로 은유한, 영화 기생충의 명장면이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기택의 반지하 집은 폭우에 잠겼다.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린다. 6월 초순부터 소나기성 집중 호우가 전국에 도깨비처럼 출몰하더니, 6월 하순 장마전선이 상륙하면서 전국이 폭우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9일부터 16일 오전 11시까지 33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 규모가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었다.

폭우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는 급류에 휩쓸리거나 침수된 저지대와 지하시설에 갇힐 때 발생한다. 2020년엔 섬진강 제방 100여m가 붕괴돼 인근 지역경제가 무너졌고, 지난해 폭우 때는 수도권 저지대 반지하 거주 주민들의 삶이 망가졌다.

가장 안타까운 건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을 막지 못한 일이다. 2020년 부산시 초량제1지하차도에 차량 7대가 물에 잠겨 3명이 사망했다. 시간당 80㎜의 폭우가 쏟아지는데 아무도 지하차도를 차단하지 않았다. 2022년엔 포항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실의 차량 대피 안내방송에 따라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던 주민 9명이 사망했다. 인근 냉천이 범람하면서 지하주차장은 8분만에 완전히 물에 잠겼다.

이번에도 청주시 궁평지하차도가 물에 잠기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침수된 차량 15대에서 어제 오후 2시까지 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747번 버스는 오히려 정규 노선을 벗어나 지하차도로 진입했단다. 지하차도 옆 미호강이 범람하면서 지하차도를 삼켰다. 이번에도 강의 범람을 예상하고 지하차도 진입은 막는 행정은 작동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장마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목마른 여름 대지를 적셔 풍요로운 가을을 열어주던, 우리가 알던 그 장마가 아니다. 6월부터 시작해 9월까지 장기간의 우기로 변해, 국지성 폭우로 국토를 요절내고 인명을 앗아간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낮은 곳은 서민의 영역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수방 행정도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집중해야 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