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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사흘간 이어진 집중호우로 안성천이 범람했다. 200채 가까운 가옥이 침수되고 농경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대원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현장에서 유독 경상도 사투리가 도드라졌다. 경남 마산시 마산어시장 상인들이었다.

상인 35명은 상점문을 닫고 자원봉사 대열에 동참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경남을 휩쓸었던 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경기도 수해자원봉사단에 받은 은혜에 보답하자는 생각에 먼 길을 달려왔다고 한다. 상인들은 "경기도 피해가 어디 남의 일입니까. 가슴 아퍼 몬 삽니다. 마음의 빚이라고 생각하고 도우러 왔지예"라며 흙을 나르고, 가재도구를 닦았다. 어려울 때 받은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이제는 처지가 바뀐 경기도민들을 위해 손을 내민 것이다.

'품앗이'는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갚는 것을 말한다. '일을 한다'는 뜻의 '품'과 갚는다는 '앗이'가 결합한 합성어이다. '두레'와 함께 천 년 넘는 전통을 가진 공동노동 방식으로, 농경사회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농사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조상의 지혜가 돋보인다. 산업화로 인해 농경문화는 퇴색했으나 재해의 현장엔 어김없이 봉사의 발길이 이어지는 등 품앗이 정신은 온전히 계승되고 있다.

충청·경북에 500㎜ 넘는 극한 폭우가 쏟아져 50명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산사태와 제방 붕괴로 주택이 침수되거나 유실되고, 가축 수만 마리가 폐사하는 등 재산피해도 엄청나다. 망연자실한 수재민들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이 수해 현장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 피해가 컸던 오송읍에는 복구 작업에 투입된 대원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한 '사랑의 밥차'가 등장했다. 명성이 자자한 경기도 수해자원봉사단도 곧 수해현장에 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담이 넘치는 복구현장에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찾아오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국토부 장관은 견인차를 막고 인터뷰를 해 구설에 올랐다. '공무원의 웃는 얼굴을 보고 화가 났다'는 댓글이 도배됐다. 참담한 광경에도 엉뚱한 소리를 해 국민들 속을 긁는다. '사진 찍기'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현장을 벗어나기 일쑤다. 품앗이는 고사하고 민폐가 돼서야 쓰겠는가.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