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금을 지불하고 대학이라는 상품을 구매한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학점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학생들은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반발하게 된다. 심지어 등록금 냈는데 왜 학점을 안 주느냐고 주장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을 정도다.
학생들은 대체로 전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항변은 합목적적이다. 애초 대학이라는 상품을 구매한 목적이 전공을 충실하게 익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교양 교육은 그 반대다. 전공은 충실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교양은 충실하게 가르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전공 시간에는 착실한 학생이 교양 강의에는 결석을 자주 하거나 교양 시간에 전공 공부를 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많은 학생이 교양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을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 뒤에는 교양을 등한시하는 사회구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양 없는 한국 사회가 교양 교육을 어렵게 하는 주범이다.
무조건 들어야 졸업 '번들상품' 비슷
물리학도에게 詩 알려주기 어렵듯
타전공생에 교양교육 쉬운일 아냐
대학에서의 교양은 전공에 견주면 더욱 불합리한 상품이다. 싫든 좋든 무조건 들어야 졸업이 되니 선택의 여지 없이 받는 번들 상품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니 끼워 팔기 강매 상품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구매자의 처지에서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번들 상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번들 상품은 대체로 본 상품을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하거나 주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본 상품이 망가지거나 버려지더라도 번들로 받은 상품은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언젠가 전공학부에 적을 두고 있는 어느 교수가 나에게 이르길, "교양은 가르치기 쉬워서 좋겠다"고 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교양은 전공보다 쉬워서 공부를 깊이 하지 않고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글쎄다. 교양을 가르친다는 것은 물리학도에게 시를 가르치고 시인 지망생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일과 같다.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도 물리에만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시를 가르치는 일은 어렵다. 반대로 물리 포기자들을 대상으로 물리학을 가르치는 일은 설령 아인슈타인이라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인문학도에게 인문학 가르치고 물리학도에게 물리학 가르치는 일은 쉽다.
반드시 알아야할 지식 가르치는일
내수업 생애 마지막까지 기억되길
실제로 교양을 가르치는 일은 무척 힘들다. 교수자가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제아무리 탁월한 학문적 소양을 갖췄다 하더라도 교양의 영역으로 나오면 전공의 탁월성이 발휘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전공 영역의 지식 중에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갑골문이나 고대 한어의 문법구조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화학의 분자식 따위는 교양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분야는 그 방면에 소질 있는 사람이 전공하면 된다. 반면 교양은 한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신의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학생을 대상으로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내가 가르친 교양이 학생의 전 생애에 걸쳐 마지막까지 남아 있기를 꿈꾼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