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이란 말에서 우리는 초·중·고 시절 특별한 인연을 맺었거나 기억에 남는 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대중문화 속에서 선생님은 어떨까? 우선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를 외치며 입시 중심의 수업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철학을 깨우쳐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떠오른다.
또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김정원 선생님도 있다. 그는 같은 반 친구들 위에서 군림하던 엄석대의 만행을 징치하고, 이에 휘둘리던 제자들을 질타하면서 제자들에게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용기와 정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소설은 독재 권력과 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굴종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한 풍자요, 알레고리이겠으나 2023년 한국의 교육 현장이라면 김정원 선생님이나 키팅 선생님은 그저 소설과 영화 속의 인물일 뿐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 특히 엄석대와 학생들을 위해 사랑과 깨우침의 매를 들었던 김정원 선생은 폭력 교사가 될 것이고, 키팅 선생은 교육이라는 미명 이래 학생들의 입시 공부와 장래를 망치는 불온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로 매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2년차 신규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공교육의 추락을 걱정하는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정부의 인식대로 정말 학생인권조례 때문일까? 교권의 하락이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이를 학생인권조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말을 호도하는 것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은 교육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두 개의 수레바퀴이지 이를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순 관계로 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성적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학벌사회와 왜곡된 능력주의 같은 사회풍토와 관련 법령들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선생이란 말은 본래 학덕과 인품이 높은 스승이나 극소수의 학자들에게나 붙일 수 있었던 극존칭이다. 한국사상사의 거봉인 퇴계 이황(1502~1571)은 자신의 사후 묘비명에 번거로운 일체의 수식을 다 덜어내고 오직 '선생'이라고만 하라 했고, 하서 김인후(1510~1560)도 오직 '선생'이란 이름 하나만을 택했다. 선생이란 말은 이처럼 대단한 권위를 지닌 영광의 이름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존중심의 회복도 중요하고, 또 교육 일선의 선생님들도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