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데리고 동네 문구점엘 갔다.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쇼핑 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귓속말로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 물었을 때 슬라임이라 대답했단다. 그래서 슬라임 한 통 담고,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도 담고, 천원짜리 작은 수첩과 지우개도 담았다. 민트색 포장지도 골랐다. 집에 와서는 서랍을 뒤져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고 아끼던 스티커도 꺼내 선물을 잔뜩 꾸몄다. 파티 전날 밤, 아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너무너무 설레고 가슴이 뛰어 불을 끄고도 한참이나 종알거렸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신축 아파트 단지다. 그래서 딸아이와 딸 친구들이 아는 '집의 형태'는 총 세 가지다. 아파트와, 아파트가 지어질 때 함께 들어선 빌라, 그리고 아파트 둘레길을 따라 지어진 상가건물(아이들은 이걸 '빌딩'이라 부른다). 딸아이는 이제 처음으로 '빌딩'에 사는 친구네에 가는 거다. 빌딩 안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아이는 궁금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사람 사는 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해." 엄마의 그런 말은 아이에게 소용이 없었다.
같은 반 친구 생일파티 초대받은 딸
잔뜩 산 선물 꾸미며 '설레는 모습'
비가 오면 친구네 엄마가 차를 가져와 아이들을 데려간다 했지만, 비가 안 오면 친구 따라 손잡고 길 건너 '빌딩'으로 가기로 했다. 생일날 아침, 날씨는 맑다. 엄마와 아빠 없이 횡단보도를 처음 건너보게 된 것이다. 아침을 먹는 아이 앞에 앉아 몇 번이나 가르쳤다. 친구 엄마를 만나면 허리 숙여 인사하고, 맛있는 것 주시면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파티 끝나고 나올 때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하기로. 싫어하는 음식이 나와도 싫은 티 절대 안 내고 한 입은 꼭 먹기로. 잘해내겠지, 입 터지게 알려줬는데 잘하겠지, 뭐, 나까지 덩달아 설레고 두근거렸다.
"엄마도 어릴 때 나처럼 이렇게 설렌 적 있었어?" 아이가 물었다. 잠깐 생각해 보았는데, 누가 뭐래도 소풍날이었다. 나는 식탁 의자를 바투 당겨 앉아 아이에게 소풍날 풍경을 떠들기 시작했다. "소풍 전날이면 환타랑 초코송이랑 소풍가방에 넣었다가 뺐다가 하면서 잠을 한숨도 못 잤어." "그때도 초코송이가 있었다고?" "그럼!" 지금의 나는 초코송이 입에 넣을 생각도 안 하는 중년의 여자지만 그때는 나도 딸아이만큼 초코송이를 좋아했다. 비싼 과자라 소풍날에나 살 수 있었지만 말이다. "엄마 어릴 땐 소풍을 걸어서 갔거든? 짝꿍이랑 손잡고 두 줄로 서서 소풍길 걸으면 길 가던 사람들이 손뼉도 쳐줬어. 손도 흔들어주고. 잘 다녀오라고. 그러면 우리도 막 손을 흔들었어. 버스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손 흔들어줬다?" 그랬지. 정말 그랬지. 병아리같이 소풍 가방 메고 신나게 걷는 아이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던, 이제는 호호할머니 호호할아버지가 되었을 그 다정했던 어른들을 떠올리는데, 나는 그만 눈물이 올칵 나고 말았다. 기껏해야 바닷가 솔밭에 앉아 초코송이나 먹었을 그 소풍길이 그땐 그렇게나 설렜지. 이런 시시한 어른으로 살 줄 몰랐던 아홉 살의 나, 열 살의 나. 운동화 밑창에 닿던 오솔길의 감촉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 또 코 빨개졌네." 슬플 때만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아는 아홉 살이라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 어릴적 소풍전날 한숨 못잔 일
손 흔들어줬던 사람들 기억에 '울컥'
딸이 어른돼 코 빨개지면 놀려야지
아이가 등교한 뒤 작업방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이가 건널 창밖 횡단보도는 고작 2차선 좁은 길이다. 저 길도 혼자 건너본 적 없는 조그만 아이가 신이 나서 생일 파티에 가겠지. 오래오래 기억하겠구나. 나처럼 어른이 된 어느 날, 그 첫 파티를 떠올리며 코가 빨개질 수도 있겠어. 그땐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빨개진 코를 놀려야지.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