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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필멸(必滅)한다. 나고, 자라, 병들어 죽는다. 나라도 기업도 매한가지다. 흥하면 망하고, 성하다 쇠락한다. 지중해 전역을 호령하던 로마제국도 천 년을 버티지 못했다. 어떤 이는 "국가는 그렇다 치고, 민족은 다르지 않으냐" 반문한다. 지구촌 어디에 순혈족(純血族)이 남아 있는가.

"주식이 떨어져 회사가 망하는가, 문 닫을 기업이기에 주가(株價)가 폭락하는가." 이런 의문엔 명징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장기 내리막이라면 합리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그 회사는 수년 내 쇠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형상(形狀) 변화엔 징조가 있다. 추세가 바뀌고 흐름이 달라진다. 성장하던 기업이 쇠락의 길에 발을 들인다. 절체절명의 기업이 기사회생하기도 한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란 저서에서 몰락하는 기업을 5단계로 구분했다.

첫째는 성공에 취해 자만이 생겨나는 단계다. 둘째는 원칙 없이 더 욕심을 낸다. 셋째는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한다. 넷째는 급격한 하락세와 위기의식에 구원을 찾아 헤맨다. 증자, 합병 등 탈출구를 모색하나 여의치 않다. 마지막은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완전히 끝나는 단계다. 재무가 망가지고 리더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린다.

추락하는 기업엔 무능한 리더가 있다.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진단을 잘못하니 처방도 엉뚱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임원이나 직원에 전가한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서 직원들을 채근한다. 결정이 늦어지고 상명하달식 일방통행에 사내 소통은 막히고, 유능한 인재들이 줄줄이 떠나고 만다. 답답해하는 임직원들에 회사의 미래와 비전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중국 사상가 한비자는 '나라 망하는 징조'를 열 가지로 꼽았다. 외교·국방·경제 등 다양하나 군주의 무능과 오만, 위선과 독선을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가장 위험한 인자로 봤다. '무능한 사장만으로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이 무능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회사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위기란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할 때가 진짜 망조(亡兆)'라는 교훈을 곱씹게 하는 명구(名句)가 아닐 수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