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의 9차 헌법개정으로 지금의 5년 단임제가 실시된지 36년의 시간이 흘렀고 '87체제'의 종식을 위한 개헌 관련 논의는 숱하게 이루어져 왔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의 원론적인 공감대는 형성되었으나 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정파간 이해관계가 조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과연 김 의장이 제안한 내용으로 개헌이 되면 지금의 극단적인 퇴행의 양태를 보이는 정치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김진표 국회의장 내년 총선 '최소개헌' 제안
現 한국정치 아부·위선 가득한 투기판 전락
한국정치는 갈등 조정이라는 본령을 상실하고 공적인 권력을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수단으로 여기는 천민정치로 전락했다. 정치가 이해 충돌을 절충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작동하지 않고, 상대 정파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된 모리배 정치의 양상을 띤 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가 사익을 탐닉하고 권력이 이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때 정치는 길을 잃는다. 사적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천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아부와 위선과 독설이 판을 치는 거대한 투전판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 지금의 정치현실이다. 정치가 '산업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최악의 정치를 정상적 정치로 복원시킬 수 있을 때에만 개헌은 의미를 갖는다.
제도개혁과 정치문화 개선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당장 지상파, 보도채널, 종합편성 채널, 유튜브 등의 방송 통신 기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성찰과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방송 관련 장치들이 정치 양극화를 조장하고 정치가 사익 탐닉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데 상당한 보완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전·현직 정치인들의 뻔히 예상되는 답변을 듣는 건 토론과 대담이 아니다.
정치는 자기 증식을 통해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정치공간은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각종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정치 낭인들은 대선판에 줄을 대고 여기서 여의치 않으면 또 다른 배경과 뒷배를 찾는 악순환이 정치의 동력을 제공하는 최악의 구조가 되었다. 각종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 다시 방송의 주변을 기웃거리고 방송은 이들을 출연시킴으로써 극단적 지지층을 통해 시청률과 청취율을 제고한다. 출연자들은 공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중도적이고 이성적 발언보다는 지지층과 당 지도부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위선의 정치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화석처럼 굳어진 게 작금의 한국정치의 작동원리이다. 극우 유튜버들의 허황된 과장과 허위 선전을 들여다보고 이를 화석처럼 믿는 무질서하고 반지성적 극단적 유권자 역시 이를 증폭시킨다.
방송, 줄대는 정치인 출연시켜 시청률 제고
양극화 조장·갈등 확대 재생산… 각성해야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권력, 영향력, 권위에 의한 통제 등의 정치적 차원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여러 견해가 소통하게 함으로써 집단지성과 사회적 합의의 방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이 인지도를 알리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방송과 정치가 공생하는 지금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작동 방식은 반정치적이고 반지성적이다. 권력은 이러한 방송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갖은 편법을 다 동원한다. 한국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인 정치의 양극화와 극단화를 방송이 앞장서서 조장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정치의 극단화가 불러온 여야 진영의 적대적이면서 서로가 살아남는 구조, 정치와 방송의 공생이 중첩되면서 극단과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기여한다. 악의적인 발언과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정당인들의 극단적 언어를 반복적으로 듣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정치 퇴행과 부정의를 조장하는 명백한 반사회적 행위이다. 일부 방송은 각성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