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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공모자 전원의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7.1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경찰이 인천 미추홀구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 사건을 수사한 지 1년이 지났다.

 

건축왕 남모(61)씨는 올해 3월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경찰과 검찰은 추가 범행을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작년 6월 경매 이행 고소 100여건
檢, 지난 3월 남씨 등 10명 구속기소

세입자 잇달아 숨진 채 발견되기도
피해 입증 안될땐 형량 경감 가능성


■ 피해자 수백여명 속출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지난해 6월 미추홀구 숭의동에 2개 동 100여 가구로 이뤄진 아파트 건물이 통째로 법원 경매에 넘어가면서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당시 인천미추홀경찰서에는 전세사기 관련 고소가 100여 건 넘게 접수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같은 해 8월께 미추홀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와 임대업자 주거지 등 10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 무렵부터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경찰은 같은 해 12월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건축업자 남씨 등 일당을 붙잡았다. 남씨가 보유한 주택은 인천시와 경기도 일대에 약 2천700가구로, 대부분 직접 지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건축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유다.

■ 법정 싸움 시작, 피해자들 비극 겹쳐


검찰은 지난 3월 건축왕 남씨 등 10명을 구속 기소했다. 남씨는 2009년 무렵부터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짓는 등 부동산을 늘려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리고, 공인중개사를 고용하는 등 조직적으로 임대사업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남씨는 사업 중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처지가 됐는데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임차인들과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남씨 일당은 지난 4월 3일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뒤 진행된 공판에서 줄곧 "사기죄가 성립될 수 없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남씨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30대 세입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어 4월에는 사흘 간격으로 남씨의 피해자인 20대 남성과 30대 여성이 각각 세상을 등졌고, 5월에도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잇따른 비극에 피해자들은 '경매 중지'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는 저리 대출, 긴급 주거 지원, 경매 일시 유예 등의 대책을 내놨고,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 여전히 진행 중인 수사…일부 피해 입증 어려울 수도


경찰과 검찰은 현재 건축왕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남씨 일당에 대한 사건을 추가로 송치하면서 범행에 가담 정도가 많은 남씨 등 18명에게는 범죄집단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전세사기 사건을 저지른 일당에게 범죄집단조직 혐의가 적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이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에서 빼돌린 전세보증금은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총 430억원(533가구)에 달한다.

일각에선 일부 세입자들의 피해 입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기 혐의를 입증하려면 전세 계약 당시 범행의 고의성 여부가 중요하다. 경찰은 2021년 3월 이후의 전세 계약 건에 대해서만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그 이전에 체결된 계약 건에 대해서는 남씨 일당이 당시 전세 보증금을 빼돌릴 의도가 있었는지를 수사당국이 밝혀내야 한다.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에 다수의 주택을 소유한 집주인 이모(42)씨가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사건(7월27일자 8면 보도="사기는 아냐" 경찰, 잠적 집주인 불송치)에선 경찰이 피해를 본 세입자 중 일부 고소 건에 대해 지난달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세입자가 처음 전세 계약을 체결한 시점(2017년 9월)이 이씨가 부동산 매물을 본격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한 2019년보다 이전인 점, 이씨가 처음부터 세입자의 보증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주택을 매입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이 이유였다.

이를 두고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전국 피해대책위원장은 "최근에 계약한 세입자든 오래 전에 계약한 세입자든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건 똑같다"며 "일부 세입자의 피해가 입증이 안 되면 피해 금액이나 피해자 수가 줄어 남씨 일당의 형량이 낮게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기 피해 입증이 안 되면 추후 남씨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진행하더라도 불리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 관계자는 "2021년 3월 이전에 체결한 전세 계약에 대해서도 범행을 입증하고자 검찰과 협의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