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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석배 왜 이제야 온거야."

과학사에 길이 남을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없을 정모(정기모임)'란 별명이 붙은 단체사진이다.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퀴리부인 등 과학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천재들이 사진의 주인공이다. 1927년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의 참석자들로, 참석자 29명 중 절반이 넘는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이니 '다시는 없을 정모'라는 말이 맞지 싶다.

그런데 이 과학계의 전설들이 한국의 한 과학자를 맞이한다. 정모 인증샷을 남겨야 하는데 이 과학자가 늦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한 듯싶다. 이 과학자는 국내 민간연구소기업인 퀀텀에너지연구소의 대표인 이석배 박사다.

물론 실제상황이 아니다. 솔베이 회의 단체사진을 패러디한 밈(인터넷 유행어) 중 하나다. 이 밖에도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공중에 떠 있는 '세빛둥둥섬' 상상도 등 같은 맥락의 밈이 온라인에 넘쳐난다. 이 모두가 불과 10여일 전,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온라인 논문사이트 '아카이브'에 논문을 발표한 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상온과 상압 환경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 'LK-99'를 만들었다는 게 논문 내용이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현상이지만 관련 분야 기업의 주가까지 들썩인다고 하니 그 열풍을 가히 짐작케 한다.

초전도체란 일정 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물질로, 현재는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극저온(영하 100도 이하) 초고압(상압의 10만배 이상) 상태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전기저항이 사라지면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는데 'LK-99'가 바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물질이다. 초전도체엔 또 자력선을 밀어내는 반자성 특성도 있어 에너지 분야를 비롯 자기부상열차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논문 내용이 사실이라면 연구진은 솔베이회의 참석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다.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아직 섣부른 기대는 경계해야 할 듯 싶다. 아카이브가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논문을 올리는 사이트인데다가 과학계에서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국내 관련 학회를 비롯해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검증에 나섰으니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한국의 연구소가 불을 지핀 지구촌 핫이슈에 가슴은 뜨거워졌지만 머리는 차게 해야 할 것 같다.

/임성훈 논설위원